독흐김천지간 줄거리 및 구성
줄거리 및 구성
화자인 ‘나’는 외숙모의 부음 소식을 듣고 문상을 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부딪힌 한 여인의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녀의 뒤를 무작정 따라가게 된다. 그녀를 따라 간 곳이 바로 `천지간`의 중심 무대인 남도의 바닷가 구계등. 이곳은 득음을 꿈꾸는 소리꾼들이 찾아와 소리를 단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구계등에 도착한 그녀를 따라 횟집을 겸한 한 여관에 든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역시 죽음의 그림자를 본 횟집 주인과 함께 그녀를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된다. 이틀째 날 밤, 그녀의 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때문에 긴장 되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드는데 곧 그녀가 방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 뛰쳐나간다. 그러나 징 소리는 득음하지 못한 절망감에 바다에 빠져 죽은 한 소리꾼의 넋을 건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날 새벽 그녀는 나의 방을 찾고 나와의 관계를 통해 그녀의 뱃속에 있던 아이와 그녀 자신 모두 삶을 유지해나가게 된다. 그녀는 떠났고, 남자 역시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뒤로하며 자신의 길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윤대녕 소설의 주된 특징들 중 하나는 여로형구조이며, 이 소설 역시 그 구조에 따라 내용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화자는 외숙모의 문상을 가다가 갑자기 발길을 돌려 낯선 여자의 뒤를 쫓는다. 광주 종합터미널에서 완도 구계등으로, 또, 그곳의 어떤 한 여관으로. 계속되는 둘의 마주침과 초면의 여자를 무작정 따르는 작중화자의 모습에서 이 둘의 관계가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숙명 같은 인연이며 필연임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상황, 즉,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였었거나 놓여있는 그들의 관계는 매우 짧은 기간 내에 깊고 내밀해지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이끌어내기까지 작가는 곳곳에 흑백의 이미지를 나타내면서 많은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흑색은 죽음과 상복의 모티프이고 백색은 눈, 화가인 외숙부의 백색, 의식을 잃기 전의 ‘그 마지막 흰색’ 등 생명이 죽음과 맞닿는 순간의 빛이다. 이렇게 삶, 죽음, 삶과 죽음이 맞닥뜨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색으로 나타낸 이 표현들은 이 소설의 묘미이자, 이 소설이 전개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연 속의 사람들
「천지간」의 주요 인물을 말해 보자면 ‘나’로 칭해지는 화자와 죽기를 원하는 여자, 그리고 완도에서 횟집 겸 여관의 주인남자가 있다. 이들은 각자 나이와 태생 등 모든 것이 다른데도 묘하게 맞물려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바로 타인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화자이며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번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정작 죽은 것은 그가 아니라 그를 구하기 위해 강에 뛰어든 그의 친구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기 대신 친구가 죽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목숨에 빚을 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깊은 의식 저편에 잠들어 있었을 그 트라우마는 살았으면서도 죽은 자의 표정을 지니고 있는 여자를 만남으로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무작정 여자를 따라 완도행을 선택한 그의 마음속에는 갚을 길 없었던 과거의 빚을 여자를 통해 청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 여자의 목숨을 현생에 붙들어 놓는데 성공하고, 평생 지니고 있던 과거의 상처도 치유한다.
‘사내’라 칭해지는 횟집 겸 여관의 주인도 여자의 생명을 지켜내는 데 도움을 주면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사내는 3년 전 여관에 머물렀던 장님 노파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때의 노파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자신의 손님으로 온 여자의 자살을 막고 싶어 한다. 그리고 여자는 자살하지 않고 사내가 지니고 있던 마음의 짐도 가벼워진다.
임신 4개월째인 ‘여자’는 실연 후 찾아온 막막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해 완도를 찾아온다. 머무는 동안 내내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그녀에게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은 다시 삶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가 내리던 그 밤 득음을 위하여 수행하던 어린 여자 소리꾼 한 명이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한다. 그러자 무당과 소리꾼들이 몰려와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부른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진혼곡인 심청가를 여자는 듣고 있다. 그렇게 여자는 소리꾼의 죽음을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간접 체험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리꾼의 죽음을 빌려 여자 자신도 한 번 죽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바로 그때 화자와의 정사(생명력이 가장 집중된 행위)를 통해 그녀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것은 진혼곡으로 불렸던 심청가의 내용과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떠난 여자의 베게에는 머리카락이 몇 올 남아있다. 죽음을 의미하는 머리카락을 남기고 감으로서 자살을 결심하고 내려온 과거의 자신이 아닌 환생된 새로운 자신이 되어 완도를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지켜낸 것은 자연스럽게 뱃속에 있는 또 다른 생명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삶에서 연유한 ‘업보’로 인해 이들은 ‘인연’의 이름으로 묶여 있다. 어딘가 작위적인 냄새가 풍기던 세 사람의 만남은 ‘인연’이라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의 힘으로 인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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