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중국의 문화대혁명

 1  영화로 본 중국의 문화대혁명-1
 2  영화로 본 중국의 문화대혁명-2
 3  영화로 본 중국의 문화대혁명-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영화로 본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영화로 본 중국의 문화대혁명
1.문화혁명?
중국공산당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혁명정신을 재건하기 위해 자신이 권좌에 있던 마지막 10년간(1966~76)에 걸쳐 추진한 대 격변. 중국이 소련식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따라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자신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마오쩌둥은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키기 위해 사상 유례 없는 노력을 기울여 중국의 여러 도시를 혼란 상태로 몰아넣었다
마오쩌둥은 1960년대초 중·소 간의 긴장관계를 겪으면서 소련의 혁명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음을 확신했으며, 아울러 중국도 그와 같은 길을 따라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또 대약진운동으로 야기된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가고 있던 자기 동료지도자들의 혁명에 대한 열정이 감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자신의 역할이 축소된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는 중국이 전통적으로 정예주의(精銳主義)가 강한 사회인만큼 새로운 도시 사회계층이 형성되지 않을까 특히 우려했다. 그리하여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위한 다음 4가지 목표를 채택했다. ① 이미 지명된 그의 후계자들을 자신의 사상에 더욱 충실한 지도자로 대체한다. ② 중국공산당을 정화한다. ③ 중국의 청년들에게 혁명적 경험을 제공한다. ④ 교육·위생·문화 조직을 되도록 정예주의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특별한 정책변화를 이룬다.
그는 이러한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처음에는 도시 청년들을 대거 동원해 홍위병(紅衛兵)이라는 집단을 조직했고, 당과 군대로 하여금 이들의 운동을 막지 못하게 했다. 또한 측근동료들로 문화혁명을 수행할 중공중앙문혁소조(中共中央文革小組)를 조직했다. 그의 아내 장칭[江淸]은 문화계를 지배할 급진적인 지식인 집단을 동원했다. 국방장관 린뱌오[林彪]는 군부가 마오쩌둥 사상의 신봉자가 되도록 했다. 마오쩌둥의 오랜 조력자였던 천보다[陳伯達]는 캉성[康生]·왕둥싱[汪東興] 등 보안 관계자들과 함께 마오쩌둥의 이데올로기와 공안(公安)에 관한 지시를 수행했다. 주석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엄청난 혼란의 와중에서도 국무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문화혁명 기간 중 이들 조력자들 사이에 대립이 존재했으며, 문화혁명의 역사는 마오쩌둥의 독창성 못지않게 이러한 대립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마오쩌둥은 1966년 8월에 개최된 제8회 제1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十一中全會)에서 공식적으로 문화혁명을 개시했다. 학교를 폐쇄하고, 홍위병에게 모든 전통적인 가치와 부르주아적인 것을 공격하게 했으며, 당의 관료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혁명성을 점검했다. 마오쩌둥은 이 조치가 젊은 세대와 그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당 기관요원에게 모두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운동은 신속히 확대되었다. 수많은 노인들과 지식인들은 말로만의 공격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학대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홍위병 내부에서는 내분이 발생해 파벌이 형성되었다. 각 파벌은 자신들이 마오쩌둥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운동을 고무시키기 위해 권장된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는 종교적인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운동으로 초래된 무정부 상태와 테러, 사회적인 마비현상은 도시경제를 와해시켜 1968년의 산업생산량은 1966년에 비해 12%나 하락했다.
이러한 10년 대란은 사실 유소기와 등소평등 당 내의 실용주의자들을 노리고 일으킨 혁명이다. 목적을 완수한 후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한 마디에 끝이 난다.
2.인생과 패왕별희에서 나타난 문화대혁명의 공통점
인생과 패왕별희에서 문화대혁명은 과거의 물건을 버리도록 한다.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 가족을 부양했던 수단인 피영희 도구를 소중하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자는 문화대혁명에서 결국 주인공은 피영희 도구를 태워버리게 된다.
패왕별희에서 샬로 부부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술잔을 깨버리게 된다. 그 술잔이 과거에 얻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생과 패왕별희에서 문화대혁명은 추억의 물건이나 집의 재산을 버리도록 했다.
두 영화에서 나타나는 문화대혁명의 공통점은 가족을 잃는 다는 점이다. 문화대혁명의 도중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의 딸을 잃게 된다. 패왕별희에서는 샬로의 부인이 자살을 하게 된다. 결국 가족을 잃고 큰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대혁명이 인민들의 삶과 가족을 파괴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