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는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자본 측에서 얘기하는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는 의미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것이다. 노동능력은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이며 노동은 노동력의 발휘이다. 노동력 상품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력의 가치를 표현해주는 생활수단의 가치는 그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1일 생활수단의 가치가 10원이고 그 생활수단을 생산하는데 총 8시간이 들어간다면, 이 생산한 가치 10원이 그 노동자의 1일 노동력의 가치이다, 그 노동자는 자신의 재생산, 즉 생활을 위해 하루에 8시간 노동을 하면 된다. 이때 만일 그 사회의 관습적 노동시간이 12시간이었다면 노동자는 8시간 노동은 자신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고, 나머지 4시간은 타인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가 자신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 필요노동이다. 그리고 타인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잉여노동이다.
노동일에는 최소한도가 없다. 만약 12시간 노동시간에서 단 필요노동 8시간만 일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다음 4시간의 잉여노동 속에서 잉여가치를 얻는 자본가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기 때문이다. 잉여가치가 무보수 노동을 뜻하므로, 자연히 자본가는 무보수 노동을 극대화하려 애쓴다. 필요노동 시간은 어떤 주어진 시기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것은 필요노동 시간이 노동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계 수단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자본가가 임금은 올려 주지 않으면서 하루의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잉여노동을 생산하는 데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잉여가치도 늘어날 것이다. 절대적 잉여가치라는 용어는 순전히 하루의 노동시간을 연장함으로써 얻는 잉여가치를 말한다.
다른 한편, 노동일에는 최대한도가 있다. 노동일은 일정한 한계 이상으로 연장 될 수 없다. 이 최대한도는 두 가지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노동력의 육체적 한계에 의해 규정 되고 있는데, 인간은 24시간이라는 1 자연일(自然日)동안에는 일정한 양의 생명력밖에는 지출할 수 없다. 인간은 하루 중 일정한 시간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일정한 시간 그 밖의 육체적 욕망(식사를 하거나 세수와 목욕을 하거나 의복을 입는 등)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일의 연장은 이와 같은 순전히 육체적인 한계 이외에 또한 정신적 한계에 부딪힌다. 노동자는 지적 사회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들 욕망의 크기나 종류는 일반적인 문화수준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노동일의 길이는 육체적 및 사회적 한계 안에서 변동한다. 그러나 이 두 한계는 모두 탄력적이어서 그 변동의 폭은 매우 크다.
제 2절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 공장주와 보야르
1. 잉여노동에 대한 정의
: 생산적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직접 재생산(再生産)을 하는 데 필요한 한도 이상의 생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제공하는 노동을 말한다.
노동자는 자신을 유지하는 노동시간과 지주(생산수단)를 위한 시간을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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