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

 1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1
 2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2
 3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3
 4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4
 5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5
 6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6
 7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7
 8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성세를 일구어낸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대왕은 왕이라는 직책권력을 바탕으로 역사 속에서 다양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정성과 배려에 기초한 관계지향적인 리더십이다. 그러나 실록의 사례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정황들로 미루어 세종은 이론적으로 난해하다는 조화 즉, 관계지향적인 리더십과 과업지향적인 리더십의 두 가지 측면에서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조선왕조 세종실록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B-M 관리격자이론과 House 경로-목표이론에 기초하여 소개해 보겠다.
- 본 론-
세종시대에는 유난히도 이름 있는 뛰어난 신하들이 많다. 재능 있는 사람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발탁했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여 친구처럼 대접했다. 이 때문에 세종의 인격에 감복한 신료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일을 맡기면 어떤 비판이 있어도 완전히 신뢰하여 전권을 부여했으며, 결점이 있어도 장점이 있으면 썼고, 작은 잘못은 용서했으며, 왕과 의견이 틀려도 좋은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일을 맡겨 성과를 거두도록 했다. 보통 사람은 장점 보다는 단점을 더 잘 기억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세종은 그 장점을 키워서 단점을 덮게 하는 지도자의 안목과 신뢰를 보여준다. 재위 16년 사헌부 관리의 오판에 대한 세종의 반응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즉 당시 사간원은 사헌부 관리를 파직시킬 뿐 만 아니라 “대간이 만일 실수하는 일이 있거든 복직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서 세종은 “자신이 성인이 아닌 바에야 어느 누가 작은 실수도 없겠느냐. 갑자기 곧 바꾸어 제수한다면 어찌 완전한 사람이 있겠는가.”라며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게 했다.
별 볼일 없었던 사람이 자신의 재량을 알아주고 믿음을 바탕으로 전격적인 신뢰를 보여준 군주를 만나, 역사 속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세종대에는 많았다. 김종서와 장영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김종서의 경우, 지도자는 어떻게 휘하의 인물을 배려하고 지켜주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김종서는 태종5년(1405년)에 23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는데, 태종 15년에 궁궐 내 비품의 출납을 담당하는 직장의 일을 잘못하여 태장을 맞고 파면 당하는가 하면, 태종18년에도 죽산현감으로서 방축 수축을 하지 않아서 또 태형을 받았다.(태종실록』이 사실만 두고 보면 김종서는 소위 일 못하는 미관말직 관리에 불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세종시대에 6진 개척과 사민정책의 추진 등 국가의 중추인물이 되어 당시를 논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세종의 리더십 속에서 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영실 역시 세종을 만나기 전에는 뇌물을 받고 태장을 맞는 비리관리였다. 게다가 그는 외국인 아버지와 기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관노의 신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다”는 장점을 인정받아 측우기 등을 만들고 상의원의 정5품 관직에까지 올랐다.
「B-M 관리격자이론」요약
◎ 1-1형
방임형, 무관심형, 무기력형
과업과 관계에 대해 모두 관심이 낮으며 리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의 노력만을 하는 리더.
◎ 9-1형
권위형, 강제형, 과업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