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강박에서 벗어나 삶의 질 향상을 찾아야
‘국익’은 없다
이솝 우화에서였던가. 우산 장수 아들과 항아리 짓는 아들을 가진 어느 아비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갈등할 수밖에 없다. 비가 오게 해달라면 우산 장수 아들은 돈을 벌지만, 항아리 짓는 아들은 손해가 크다. 반대로 맑은 날만 이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두 아들의 처지가 바뀐다. 두 아들 모두가 만족할 날씨는 없다.
나라 정책도 마찬 가지다. 모두가 만족할 정책은 없다. 이익을 얻는 그룹이 있는 반면 그 조치 때문에 손해를 보는 집단도 있다.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그런 ‘국익’은 없다. 권력을 장악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는 세력이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만든 허구적 개념일 뿐이다. ‘도시의 균형적 발전’ 등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되던 뉴타운 정책. 용산의 예에서 보여주듯이 시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도시 재개발로 이익을 본 세력과 손해를 본 세력이 분명이 존재했다. 그리고 국가는 폭력을 동원하여 ‘국민’ 중 일부를 배제했다. 그들은 국민이 아니다. 그렇기에 국익은 없다. 부분 이익, 집단 이익, 계급 계층 이익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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