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창의성 율리우스 카이사르
1. 비전과 영향력
카이사르는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국경선을 서유럽과 아프리카 북부 그리고 소아시아로 정하고 영토확장과 함께 정치적으로는 식민관계지만 속국의 문화와 종교 등 전통을 인정하면서 공존공생의 자세를 가졌다. 이러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공화정제도에서 로마제국의 건설로 체제를 바꾸면서 제국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긴장감, 정서적 공감, 대상과의 상징적 일체감을 이용해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항상 청중을 의식하여 그들이 무엇을 즐거워하고 무엇을 지루해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2. 선택과 실행
"주사위는 던져졌다." 왕정에 이은 공화정 통치체제의 문제인식에 대하여 새로운 로마를 위한 목표와 개혁, 그리고 변화를 위해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에 병사들에게 카이사르가 한 말이다. 갈리아 전쟁의 승리로 카이사르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원로원은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루비콘강을 건너서 로마로 진격한다. 급박해진 원로원은 로마의 명장 폼페이우스를 앞세워 카이사르를 공격하려 했으나 카이사르의 뛰어난 전략에 결국 패배하게 된다. 폼페이우스를 쫒던 중 카이사르는 왕위계승 싸움에 휘말려 알렉산드리아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클레오파트라 7세를 왕위에 오르게 하여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았다.
또, 그는 소아시아 파르나케스를 격파하고, 이때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세 마디로 된 유명한 보고를 원로원으로 보냈다. 그렇게 그는 오랫동안 공화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원로원 지배를 완전히 타도하였다. 이로써 1인 지배자가 된 그는 각종 사회정책(식민 ·간척 ·항만 ·도로건설 ·구제사업 등), 역서의 개정(율리우스력) 등의 개혁사업을 추진하였다. 종신 독재관을 비롯한 각종 특권과 특전이 그에게 부여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권력이 한 몸에 집중된 결과, 왕위를 탐내는 자로 의심을 받게 되어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를 주모자로 하는 원로원의 공화정 옹호파에게 원로원 회의장에서 칼에 찔려 죽게 된다.
3.인재와 제도
카이사르는 식민지를 개척할 때도 현지인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였다. 스페인 총독으로 부임했을때 발부스라는 현지인을 발굴하여 정책을 실행하도록 하고 자신은 포르투갈을 제패하는 데 전념했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발부스가 동행하였고, 훗날 그는 로마의 집정관의 위치까지 올랐다. 또한 그는 후계자로 청년 옥타비아누스를 지명했고 그가 로마제국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유언장을 만들면서 그의 선견지명과 카이사르의 안목을 보여주는 사실이었다.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고 있던 때 카이사르가 정계에 관여하면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 함께 1차 3두정치를 실시한다. 이로 인하여 원로원을 누르고 로마를 셋으로 분할하여 통치했다. 또한 카이사르는 식민지를 통치할 때 개방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식민지의 사람들에게 일정요건을 갖추면 시민권을 부여하여 로마를 적대관계가 아닌 보완관계로 인식하도록 하였다. 갈리아 전쟁 승리 후에도 그는 갈리아 문명을 존중해주었고, 로마의 최고실권자가 되어서도 반대파까지 포용하고 설득하여 관용정책을 고수하였다. 그가 암살당한 이유도 반대파들을 숙청하지 않고 등용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4. 풍토와 문화
카이사르는 기록문화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기원전 58년부터 51년까지 8년간 갈리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 "갈리아 전쟁기"를 발간하고 "내전기"를 집필하여 동족상잔의 비극까지도 객관적으로 기술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책을 발간한 이유가 시민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자기가 한 행위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집정관 시절에도 원로원회의 결과를 광장에 개제 하면서 시민들과 정보를 나누었다.
5. 솔선수범과 공정성
카이사르는 전쟁 중에 항상 앞장서 싸웠다. 그가 먼저 나서서 싸웠기 때문에 부하들은 망설 임 없이 그를 믿고 따랐으며 고전하고 있는 군단이 있으면 후위에 있던 병사의 방패를 빼앗아들고 최전선에서 백인대장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사기를 충전시켰다. 이러한 그의 행동으로 인해 카이사르의 군대는 전쟁터에서 승승장구 하였고, 병사들은 카이사르와 함께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카이사르는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하여 세제의 공정성을 확보하였다. 식민지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납세자 명단을 공표해야 한다는 의무를 공표함으로써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직권남용을 방지하고 기본과 원칙이 로마제국을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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