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에 입각한 도덕 경험사례 칸트의 도덕
2. 공리주의의 도덕
도덕이란 개인에게 제일 높은 선호를 주는 것을 기준으로, 선택된 예상된 결과의 행복을 높여, 합리적이고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말한다.
3. 나의 도덕적 경험
첫번 째 사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부반장이었던 나는 함께 부반장을 하는 친구와 함께 선생님의 시험 채점을 도와드리고 있었다. 시험은 수학경시대회 문제였는데, 성적에 조금 반영되는 것이어서 시험결과가 학생들에게 평소와 달리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방과 후 남아서 같이 빨간 색연필로 채점을 하고 시험지 맨 오른쪽 위에 맞는 개수를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명이 점수를 부르면 한명이 반 친구들 이름 옆에 점수를 기재하도록 했다. 나는 기재하는 역할을 맡았고, 친구는 부르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그 시험지들 사이에는 나와 친구의 시험지도 같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간 쯤 진행했을까? 친구가 자신의 점수를 불렀다. 12점. 높지 않은 점수였지만 나는 곁눈으로 우연히 그 친구의 시험지를 보게 되었다. 분명 시험지에는 6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왜 12점이라고 자신의 점수를 내게 알려줬을까? 나는 의아했지만 못 본 척 하고 12점이라고 적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의심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덧 내 점수도 불리고 우리가 맡은 과제는 마무리가 되었다. 선생님께 전해 드리고 나오면서 선생님이 다시 시험지와 내가 적은 점수를 다시 확인하지 않을까 살펴보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의 시험지를 한 쪽 캐비넷에 넣으시고 잠그셨다. 그리고 내가 적은 점수들은 다시 어딘가에 기재하기 시작하셨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갖가지 생각들로 가득찼다.
“선생님께 말해야 하나? 별로 높지도 않은 점순데 그냥 넘어갈까?”
당시 나의 점수는 그 친구보다 조금 더 높았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더 잘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서는 나 보다 밑에 있는 아이들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정직하게 내 점수를 기재했는데 그 친구는 점수를 거짓으로 했기 때문에 억울하다.” 여기서 칸트가 말한 도덕의 두 가지 요건이 적용될 수 있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하는 도덕에는 모순점이 나타난다. 첫째, 그 친구를 내가 더 나은 사람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본 것. 둘째, 나와 타인이 동등한 조건이어야 한다는 것. 결국 나는 첫 번째의 요건은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두 번째의 요건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두 번째의 보편성이란 요건 또한 친구를 나를 빛내게 하는 수단으로 필요한 조건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도덕교육을 배운 지금의 나라면 그 당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았을까? 칸트의 도덕으로 보자면 그 친구를 정당성을 가지고 설득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여기에는 나의 속마음 또한 그 친구가 진정으로 자율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해야 할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제로 나의 사례에는 친구를 따로 불러서 따졌던 기억이 난다. 정당성을 가지고 설득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나의 억울함이 앞서 감정적으로 호소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친구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선생님께 그 날 저녁에 전화해서 솔직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타이밍이 너무 맞지 않았던 탓에, 그 친구와 절교까지 갔지만,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 지금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그 당시 일을 회상하면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참으로 세상일은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사례
전에 다녔던 대학 2학년 때 일이다. 교양영어시험을 준비하는 어느날 충격적인 정보를 듣게 되었다. 시험문제는 100% 교재에 있는 영어본문을 괄호 넣기 해서 나오는데, 우리 앞 분반 아이들은 늘 축소복사로 컨닝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A+을 받았다는 것! 우리 분반 아이들은 다들 공황상태에 빠졌다. 몇 백명을 앉혀 놓고 교수님 혼자 감독하는 시험이라 컨닝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근처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결국, 우리 분반 아이들은 다함께 컨닝을 하기 위해서 007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물론, 친하지 않은 몇몇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상대평가라 참여하지 않으면 타격이 컸다. 몇 장이나 되는 영어본문을 다 외워서 치는건 만점이 보장된 컨닝에 비교하면 나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컨닝은 나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밤새워 100% 본문을 외우기에는 너무 앞이 막막했고 자신도 없었다. 결국, 나는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함께 하면 이상하게 내 행동에 합리화가 쉬워진다. 하지만 시험 당일날 소심했던 나는 교수님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주춤거린 탓에, 100% 컨닝에 실패하고, 70%정도 컨닝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A를 받았다. 물론 주위 친구들은 A+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받은 A는 왜 이리 슬퍼보였을까?? 슬퍼보인 이유는 도대체 뭘까? 컨닝을 100% 못해서? 아님 컨닝을 했기 때문에?
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존재했다. 첫째는 컨닝을 해서 A+을 받는 것, 둘째는 양심을 지키는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해서 A+을 받는 것. 하지만 처음의 선택은 100% 확실하지만, 두 번째는 불확실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컨닝을 할 것이라서 A+을 못 받는게 더 확실했을지도 모른다. 난 장학금을 꼭 받아야 했고 그래서 성적을 꼭 잘 받아야만 했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컨닝 안해서 장학금 못 받는 경우보다 좀 찔리긴 하지만 컨닝 하고 장학금 받는 기쁨이 더 클거야~” 내게 장학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영어는 그 중에서도 내 성적에 많은 비중으로 승패를 좌우하는 과목이었다.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전체가 행복하다는 것이 무얼까? 내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다함께 컨닝을 한 우리들이 공리주의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부분에 있어 공리주의자들의 약점이 존재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는 컨닝을 해서 다같이 A+을 받았다. 그래서 다들 행복해 했고 뿌듯해 했다. 그러면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도덕적 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
내가 받은 A가 슬픈 이유는 아마도 칸트의 도덕이론을 빌려 찾는 것이 좋겠다. 아마도 내가 받은 A가 남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획득한 점수가 아니기 때문일테다. 사회적으로 나쁘다고 배운 행동을 내가 했고, 내 실력과 무관하게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옳다고 믿은 신념을 일관성 있게 지키지 못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 장학금이란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빠른 길을 찾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벤담이 제시한 선택의 기준으로 하자면 다산성과 순수성 항목에 있어서 나의 전체 쾌락의 양은 컨닝을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평가라는 한계로 인해 전체를 포함한 계산이 필요했고 결국 나의 행동은 컨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공리주의의 한계인 전체와 개인의 간격을 메울 방법이 없음이 드러난다.
내가 생각하는 도덕이란 나와 타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자율적 인간의 행위다. 이러한 행위는 나와 타인이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한 행위들로 인하여 행복을 얻진 못했다.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좀 더 진심으로 충고를 하지 못했고, 담합컨닝을 옳다고 소리치지 못했다. 공기처럼 도덕은 의식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도록 내면화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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