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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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들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제도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조적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을 기꺼이,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이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목수를 고용해서, 목수가 계약한 내용대로 일을 해내는데 그 일로 일을 어떤 식으로 해냈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까? 목수는 계약한 내용대로 일을 해내면 그만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식인도 비슷합니다.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 즉 우리가 학교라고 부르는 기관을 소유한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를 소유한 사람들의 이익에 어긋나지 않도록 현실 세계를 애매하게 표현함으로써 그들이 기대한 효과를 안겨주는 사람들이 바로 지식인입니다.
“학교는 중요한 진실을 회피한다”는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교사의 책임, 어떤 면에서 정직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책임은 무엇보다 진실을 말하려는 자세일 것입니다.
또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교육과 관계 있는 대상은 학생입니다. 학생들을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건설적으로 참여하기를 소망하는 공통의 관심사를 지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말하지 말고, 더불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교사가 갖추어야 할 두 번째 덕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교사의 의무는 학생들이 진실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학교에 관한 정책을 입안하고, 설계하고 결정하는 부와 권력을 쥔 집단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 정보를 감추고 통찰력을 억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왕좌왕하는 무리는 그저 “방관자”로서 우리 민주주의의 한 축을 차지할 뿐 “행동하는 참여자”로서 역할을 해내지 못합니다. 우리 민주주의에서, “우왕좌왕하는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그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지만, 서거라는 행위가 끝나면 다수의 대중은 뒤로 물러서서 다시 방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왕좌왕하는 무리”가 방관자 이상의 역할을 하려 할 때, 즉 다수의 대중이 민주적 행위의 참여자가 되려할 때, 그 특수계급은 그런 현상을 “민주주의의 위기”라 떠들어대며 저항합니다.
올바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깨닫는 최선의 방법은 민주주의를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학교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측정하는 척도는 이론과 현실의 근접성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민주 사회에 소속된 개인은 누구라도 그들의 삶과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세금이 어떤 식으로 걷히고 어떤 식으로 사용되어야 하는지, 그 사회가 어떤 대외정책을 추구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누구라도 그들의 삶과 직결된 의사결정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론과 정부에 모든 힘이 집중되어 개인이나 집단은 그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대외정책을 입안하는 데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민주 세계를 목표로 하는 교육이라면,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는 사건들에서 관련성을 찾아내어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벗겨줄 비판적 도구를 학생들에게 안겨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학교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화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기보다는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험하도록 해주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진정한 역할
2장 민주주의와 교육
사실 듀이와 러셀은 많은 점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하지만, 적어도 러셀이 “인간 중심적 정신”이라 칭했던 부분에서는 의견을 같이한다. 그 정신은 계몽정신에 뿌리를 둔 것으로, 교육이 물로 잔을 채우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라 꽃이 나름대로 커가도록 옆에서 돕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결국 그들은 18세기의 정신을 되살려낸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정상적이고 창의적으로 꽃피워 나가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듀이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사회에서 노동자는 사용자가 임대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대한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듀이는 기본적인 문제에서 고전자유주의의 창시자들과 생각을 같이 한다. 또한 노동자 계급이 폭력과 선전에 결국 굴복할 때까지 초기 산업 혁명때부터 노동운동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던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서를 감싸주었다. 따라서 듀이는 교육의 장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자유롭고 지성적으로 일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대가를 조건으로 일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비도덕적으로 비열한 짓이라 주장했다. 그럴 경우 자유롭게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고전자유주의와 노동운동이 주장한 논리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따라서 듀이의 주장에 따르면, 산업도 봉건적 잔재를 버리고 민주적 사회질서로 변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고전자유주의와 계몽시대에 뿌리를 둔 전통 무정부주의자들의 목표인 노동자들에 의한 지배와 자유로운 연대에 기초한 민주 사회가 되어야 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정의한 민주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귀족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후자의 길이 훨씬 쉬운 길이다. 제도권이 그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 길이기 때문이다. 부와 특권과 권력이 보장된 길이기 때문에, 풍요한 보상을 당신에게 안겨줄 수 있다. 당신이 이 길을 택한다고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전자의 길, 제퍼슨이 정의한 민주주의자의 길은 투쟁, 혹은 패배의 길이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를 잊어야 한다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영합한 사람은 상상조차 못할 보상이 있는 길이다. 150년 전, 즉 로웰의 팩토리 걸과 로렌스의 직공들,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심어주려는 시도가 있었던 때와 지금의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세계는 토마스 제퍼슨의 시대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선택 가능성은 근본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3장 조작된 역사
결국 미국이 원하고 행하는 것은 언제나 옳고 정의로운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의문도 있을 수 없다. 이런 도덕적 성실성을 다른 나라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이다. 순박함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참신한 매력이 있지만, 그 매력이 급속히 사라질 때 순박함은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는 도구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