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의 교육사상
1790년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칸트철학에 몰두하다가 자유 문제(自由問題)에 대한 해결을 얻은 뒤로부터 칸트철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1791년에는 직접 칸트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칸트의 주선으로 계시 비판 (계시비판,Versuch einer Kritik Aller Offenbarung)이라는 종교론(宗敎論)을 출판하였으며 칸트의 ‘이원론’(二元論)‘통일원리’(統一元利)를 발견하여 독자적인 철학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1798년에는 ‘신(神)을 도덕적 세계로‘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그 유명한 무신론(無神論)논쟁을 일으켜 바이마르 정부에 의해 파면되어 재직4년의 예나 대학을 떠나 베를린으로 갔다.
1805년 에어랑갠대학에서 강의했으나 이때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독일에도 미쳐 1806년 프랑스군대가 독일에 쳐들어오자 퀴니히스 베르크로 피난했다가 1807년 프랑스군대가 점령하고 있었던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여기에서 독일 “국민에게 고(告)함”이란 유명한 강연을 함으로써 교육 재건을 부르짖고 독일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그의 저서로는 등이 있으며 보다 대중적인 저서들로는 와 이 포함된다. 이밖에도 이 있으며 그가 1804년, 1812년, 1813년에 각각 행한 지식학에 관한 강연들은 그의 사후(死後)인 1834년에 출판되었다.
2.교육사상
피히테의 교육 사상은 그의 사상적 바탕을 실천적 관념론에 둔 지식학을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독일국민에개 고함’의 개관
프랑스 대혁명으로 황제의 지위에 오른 나폴레옹은 1806년 10월 26일에 베를린에 침입하였다. 이러한 프랑스군의 진격 앞에 독일 국민은 사기를 잃고 속수무책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여기에 피히테는 두려움 없이 독일 국민을 일치단결 시켜 독일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한 국민정신을 진흥시켜려 ‘독일 국민에게 고함(1808)’이라는 논제로 강연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피히테에 의하면 독일사람의 인간교육, 즉 독일 국민교육은 애국심 교육이고 독일 사람의 계몽은 독일 국민의 자각을 말한다. 이것은 근대화 운동에 있어서의 새로운 인간 형성을 위한 이상주의(理想主義)의 출발이었으며 피히테도 이 이상주의 정신에 의한 운명 극복의 실천적 인간형성의 근본 방책으로써 교육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2)‘독일국민에게 고함’의 교육적 내용
피히테는 제 1 강연 ‘예고와 전체의 개관‘ 에서 독일군이 패망하게된 가장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이기심과 자기탐욕에 있다고 비판, 독일 국민의 존립을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새로운교육, 즉 인간자체를 형성하는 교육과 특수한 계급의 교육을 위한 교육이 아닌 국민으로서의 국민교육을 제시하였음. 제 2-3 강연에서 2회에 걸쳐 계속되는 ‘새교육의 본질 일반론’에서 도의교육(道義敎育)실시를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도의교육은 피교육자(被敎育者)의 정신적 활동을 자극함으로써 능동교육(能動敎育)에 의해서 피교육자의 자아를 높이려고 한다. 제 4-5강에서는 각각 “독일인과 여타 게르만 민족들의 주요한 차이점” 과 그 차이점에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것으로서 인간교육 일반론이 아닌 독일 국민교육론을 전개함.(강연구성 전체14강 1강:서론 2-11강:독일국민교육론 12-13강:독일국민교육계몽론 14강:결론)
3)교육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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