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는 목표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다수’와 ‘행복’을 측정하여 값으로 산출, 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이론이다. 나의 의문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수’와 ‘행복’을 측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행복’은 측정 가능한 가치인가? 과연 ‘다수의 행복’이 결과적으로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가? 그래서 지금부터 다수결의 원칙이나 선거, 투표를 통하여 우리의 삶에서도 빈번히 사용되는 이론인 공리주의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려고 한다.
1.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공리주의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공리주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공리주의 [utilitarianism, 功利主義] (두산백과)
(功利主義, utilitarianism)는 19세기 영국에서 벤담, 제임스 밀, 존 스튜어트 밀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회사상으로, 공리성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하는 사상이다. 곧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 하는 유용성과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공리주의는 인간을 언제나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는 본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한다. 인간 행동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기준도 이러한 공리적 인간관에 기초하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의 쾌락과 행복을 늘리는 데 기여하는 것은 선한 행위이지만, 고통과 불행을 크게 하는 것은 악한 행위이다. 나아가 사회의 행복을 최대로 하려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많은 행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리주의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을 실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리주의에서는 모든 이익을 더하고 정책에 드는 모든 비용을 뺀 것이나 행복에서 고통을 뺀 총 합이 가장 큰 것, 공공의 복지를 극대화시키고 공동체의 행복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일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듣기에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대로만 실현된다면 온 공동체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이는 비용, 편익 분석으로 기업이나 정부에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한 번 되새겨보자. 그래서 공동체 모두가 행복해졌는가? 많은 부분에서 공리주의를 따르고 있지만 실제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세상은 이 이론만큼이나 이상적이지 못하다. 왜 우리 공동체는 행복해지지 못했는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2.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
(1) ‘다수’와 ‘행복’을 측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재개발 되고 나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다"
"강제 퇴거 이후 기막힌 5년을 살았습니다. 재개발이 되고 나면 우리(철거민)는 사람도 아니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중략)
김씨는 20대인 세 딸과 함께 생활한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으로 들어오는 것이 전부다. 물도 화장실도 없어 볼 일은 신문지에다 해결 중이다. 그는 "강제 퇴거 이후 기막힌 5년의 세월을 살았다"면서 "재개발이 되고나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없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철거 때문에) 청소년기를 힘겹게 보낸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 철거민은 "재개발법은 건설업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며 "세입자는 백전백패"라고 나직이 말했다.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25371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106010319240770060
, 마이클 샌델의 저서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