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던타임스 감상문4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다가 시위 군중에 휩싸여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몇 년의 감옥살이 끝에 풀려난 찰리는 빵을 훔친 소녀를 도와준다. 집을 사기 위해 백화점 경비원으로 취직하기도 하고, 철공소에서 일을 하나 소동으로 일자리를 잃는다.
찰리는 카페에서 일하게 되는데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다시 떠돌이로 남는다. 거리에 나선 찰리와 소녀는 어디론가 떠나는데 희망만은 절대 버리지 않았다.
2 - 영화 내용 이해및 비판
찰리 채플린의 영화 는 다양한 근대적 공간들에 대한 영화며, 그 근대적 공간들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방랑자에 대한 얘기다.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트적인 금욕주의를 통해서 발전했다. 그것은 자본가들에게는 절욕과 절약을 통해 축적 그 자체를 추구하도록 했으며, 노동자들에게는 주어진 직업을 천직으로 삼도록 했으며,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억제하고 고된 노동을 견뎌 내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사정은 포드주의가 생산에 도입되면서 크게 달라진다. 그것은 대량생산을 위한 체제였고, 대량생산을 통해서만 존립할 수 있는 생산체제였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자본주의의 이상을 컨베이어 벨트와 대규모 기계 등을 통해 실현시키려는 체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대량생산한 상품은 과연 누가 소비할 수 있는가? 이러한 모순에 쌓여서 폭발한 것이 바로 1929년의 대공황이다. 방랑하는 분열자의 출현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봉건적 가신집단들의 해체와 폭력적 토지수탈에 의해 추방된 사람들이 무일푼의 자유로운 그들이 세상에 나타난 것과 동일하게 빠른 속도로 도저히 흡수될 수는 없었다.
또한 그들의 관습적인 생활양식에서 갑자기 내몰린 사람들이 그만큼 갑자기 새로운 환경의 규율에 순응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대량으로 거지, 도둑, 부랑자가 되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상 이러한 분열적 흐름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흘러가는 기계에 너트를 조인다. 벌이 눈앞에서 뱅뱅 돌며 채플린을 위협해도 그로서는 쫓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그러다간 어느새 조여야 할 기계는 저만큼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동료와 다투는 것도 기계에 매여 있을 정도로 심각 하다.
일찍이 과학적 관리란 이름 아래 노동자들의 동작과 시간의 사용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했던 테일러의 이상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그것은 노동과정을 노동자의 기능에서 분리하고, 구상과 실행을 분리하며, 구상기능을 자본가, 관리자가 독점하여 노동 과정의 각 단계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 개개인의 작업을 관리자의 의지대로 통제하려는 자본가의 오래된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채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손. 거기서 손을 움직이는 의지는 채플린의 것이 아니다. 테일러주의의 요체는 바로 이처럼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를 관리자의 의지대로 길들이고 작동시키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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