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재현과 현실의 관계 홍상수와 변혁의 영화를 중심으로

 1  영화적 재현과 현실의 관계 홍상수와 변혁의 영화를 중심으로-1
 2  영화적 재현과 현실의 관계 홍상수와 변혁의 영화를 중심으로-2
 3  영화적 재현과 현실의 관계 홍상수와 변혁의 영화를 중심으로-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영화적 재현과 현실의 관계 홍상수와 변혁의 영화를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현실, 영상, 관객은 영화를 구성하는 축이자 영화가 존재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현실’을 재구성한 ‘영상’ 이미지를 ‘관객’이 보는 것이다. 현실이 영상 이미지가 되는 과정에서 조작이, 영상 이미지가 관객에게 수용되는 과정에서 의미화가 발생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현실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뜻하는 이야기를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영상이 현실을 얼마나 잘 담았는가보다 재현된 영상이 관객에게 어떻게 해석되는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현실이 영상 이미지로 바뀌는 조작 과정에서 연출이 들어가게 되고, 현실은 변형된다. 앙드레 바쟁은 사진 이미지를 본질적인 객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았고, 영화 역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기술의 발전이 완전한 리얼리즘을 완성시킬 것으로 기대했으나 기술은 영화 내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구축하는 능력을 확장시키는데 힘이 되었다.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창조된 새로운 현실이며,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써 일정한 시점과 선호된 해석을 제공한다. 그러나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그것이 환영이라는 관념을 제거하고, 영화를 통해 보여 지는 창조된 현실을 현실인 것처럼 지각하게 하는 현실효과를 이끌어 낸다. 내러티브 구조는 현실을 감추어 영상을 통해 창조된 현실에 의도된 의미를 부여하는 재현의 관습이자 전략이다. 영화는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현실세계를 재생산한다. 영화가 산업화되고 많은 대중에게 소비되기 위해 내러티브의 논리와 배열을 이해하기 쉽도록 규칙과 약호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가 관객을 영화라는 환영 속에 통합시켜 영화라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있다.
누벨바그 시대에 이르러 영화는 현실 자체가 될 수 없음, 스스로 허구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재현으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인정하고 영화에 대한 시각 자체로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 누벨바그 정신의 특징이다.
현실과 영화에 대한 국내의 흐름을 살펴보자면, 우리나라의 영화가 일제시대를 경유하여 처음 만들어져 매체에 대해 사유하고 유희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영화에서의 현실은 사회적 현실을 지칭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었고, 폭력적 근대화를 겪으며 리얼리즘이란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소재로 비판하는 것이 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락영화의 흐름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나 영화가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과 현실의 재생산을 자각하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2. 홍상수: 현상에 물질성을 부여하기
에서는 일상 자체가 드러난다. 어떤 의미를 담보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며,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갖는 의미는 사랑이나 인생의 본질이 아닌 각자가 형성한 관계에 따라 분산되고 변화된다. 실제 현실에서 인간들의 관계란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 주목해서, 이 영화는 현실을 명료하게 재현하기보다 그대로 포착하여 현실을 제시하고자 했다. 사실에 대한 해석을 목적으로 해 허구, 상징, 은유화 되어있던 기존의 영화적 관습을 거부한 것이다.
영화에 만들어진 현실과 실제 현실에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개념을 붙여보자면 현실은 컨텍스트, 영화에 만들어진 현실은 텍스트로 대응된다. 컨텍스트에 연출이 가해져 영화에 들어올 때, 의식이 포착한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 현실이 재구성된다. 즉, 텍스트는 실제 현상인 컨텍스트의 부분이 아니라 의식의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구성된 새로운 현실이다. 영화 텍스트는 현실이라는 컨텍스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고, 텍스트의 목적에 의해 현실은 영화화 된다. 그러나 에서는 텍스트가 목적이 아닌, 허구의 질료를 입히지 않은 이미지를 제공했다. 미리 해석하거나 의도하여 연출된 것이 아닌 감독이 인지하는 세계에 대한 포착만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서사의 의미구성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이야기의 목적을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은 현실의 조각들이 드러나는 것으로 진행된다. 관객은 전지적인 위치에 놓여있지 않으며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조각만을 볼 수 있어 명료한 인과적 의미를 알 수 없다.
에서 감독이 현실 그 자체의 생경함을 드러냈다면, 에서는 현실의 균열을 통해 그 이면의 것을 드러내고 있다. 여전히 등장인물들의 경험하는 현실의 조각을 보여주면서 그 이면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실들을 노출한다. 현상 그 자체에서 나아가 틈을 통해 이면을 포착하고자 한다. 감독은 관객과 등장인물을 지식의 공백상태에 두고, 어떤 것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를 통해 보여 지는 현실을 모호하고 거짓이기도 한 것으로 묘사해 관객에게 인물들의 관계나 영화의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것이다. 관객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현실과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현실이 진실을 드러낸다는 관념에 틈을 낸다. 드러난 현실 내부에 진실과 상관없는 내면의 풍경들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은 심리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감독은 ‘기억’을 사용한다. 이 영화는 개인이 기억하는 심리에 의해 포착된 현실에 주목하고 여러 개의 구분된 챕터를 통해 서로 다르게 기억된 현실을 보여준다. 서로 다르게 구성된 심리적 현실이 균열을 일으키고 현실에 대한 인식을 만든다. 이 영화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현실은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의미는 한 자리에 멈춰있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은 개인의 심리가 포착한 현실을 드러내지만 심리를 해석하지는 않는다.
과 에서도 현실과 심리의 이면을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표면적인 것을 최소화 하고 신화성을 파괴하여 현실을 평이한 것으로 만든다. 다만 현실의 조각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과 세계의 내면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의도된 텍스트 내부가 아닌 자신의 현실 속에서 판단하도록 만든다. 홍상수는 그의 영화를 통해 해석된 세계가 아닌 해석을 요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