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으로 성골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7세기에 들어서면 왕위계승 자격을 가진 성골은 진평왕의 딸 덕만(후일 선덕여왕)과 조카딸 승만(후일 진덕여왕)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성골남자가 없다는 것은 성골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성골 다음 계급인 진골 남성 중 유력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그러나 화백회의는 당시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이던 진골의 김용춘을 왕으로 추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평왕의 딸 덕만을 선덕여왕으로 추대하였다.
남성 지배 중심의 고대 사회에 여성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일이었다.
특히 남성 귀족들만으로 이루어진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덕만공주를 왕위계승자로 지명한 것은 파격 그 이상이었다.
계급은 성골이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왕위를 덕만공주는 자신의 능력으로 당당히 획득했다.
- 탁월한 인재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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