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치 이야기2
청소년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나의 기준들을 적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 내용을 읽어보면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교원 등의 자격가진 자로서의 역할이 아닌 활동가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글이 있다. 활동가는 운동성이 강해야 하는데 이는 활동의 본질적 이유와 집중할 수밖에 없는 근거와 가치들을 자기 가슴으로 받아야 한다는 뜻이란다. 청소년상담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운동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운동성을 생각했을 때 마음의 운동성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활동 본질의 이유와 근거, 가치를 가슴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읽고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큰 깨달음이 있었다.
이어서 청소년활동가의 조건이 나온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참조되어 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이다. 발로 당사자를 만나야만 가슴이 움직이고 가슴이 뛰어야만 학습하고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글을 읽으며 정말 내가 듣고 싶었던 참된 교육의 말이 아니었다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움직이는 힘의 방향을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로 생각이 정리가 되어야 마음에 감동이 오며 그 후에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상당히 게으른 사고방식의 구조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이론과 지식으로 청소년에 대해 공부해도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우선 발로 당사자를 만남으로써 몸이 반응하고 가슴이 움직이며 그에 따라 학습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깊이 고민할 수 있다는 중요한 배움을 얻게 되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라는 말도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왜 청소년에게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67P를 보면 ‘소명이란 부름이며 이미 사람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다. 소명을 붙잡는 순간 인간은 열정에 불타게 된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슴 안의 그 무엇이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 소명은 신과 나와의 관계에서 알아가는 노력이 없으면 타인에 의해 지시당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소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 가슴안의 소명을 알아내는 것이 삶의 이유라고 까지 적혀있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분이 나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계획이 있으시며 우리 인간은 그 소명을 찾기 위해 생각하며 탐색한다. 올해 22살이 된 나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나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일까, 그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하시려 하는 것일까 아직까지도 정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로 가득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품었던 생각은 나처럼 힘든 청소년이 있다면 내가 그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존재가 되어줘야지, 기성세대와 같이 앞뒤로 막힌 사고방식으로 청소년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느끼며 울고 웃는 사람이 되어줘야지 라는 다짐들을 수없이 해왔다. 그래서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고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나의 위로가 아닌 그분의 위로를 가슴 깊이 전하고 싶었다. 청소년기 때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모두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셨다. 그분과의 교제가 서툴고 어려웠지만 그분만큼은 나를 신뢰하고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고, 일어서도 계속 무너지지만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담대함이 있었다. 69P에 나온 글처럼 세상의 가치가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일지라도 그분이 내 가슴깊이 주신 소명을 발견하고 잘 가꾸며 희망찬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또한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참 평화일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주신 소명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그분 안에서 친밀한 교제 가운데 내 자아를 찾아가며 소명을 발견하길 간절히 원한다.
나중에 청소년상담사가 되어서 청소년들과 상담할 때 나의 경험을 거름으로 삼아 그들 또한 그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며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 자신의 소명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싶다.
그 다음 챕터로 넘어가서 ‘길을 가는 이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랑하는 일’에 대해 적으려고 한다. ‘길을 가는 이유’에 대해서 읽을 때는 우리 기성세대의 목적 방향을 제시하는 가치관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항상 답답했는데 가슴이 뻥 뚫릴 만큼의 해답 글이 적혀있어서 가슴이 벅찼었다.
133P에 나온 글을 적어보면 이렇다. “안정성을 강조하는 공무원이 아닌 진정으로 지역 시민들의 안녕을 위해 고민하며 행정을 수행하는 공무원, 여성 결혼 상대자 1위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을 진실로 사랑하기에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삶에 대한 소중한 가치와 목적을 설정할 때 공부는 재미있어 진다.” 정말 이 글은 우리 가족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각 직업에는 그에 따른 소명을 요구한다. 정말 가슴깊이 이미 내제되어 있는 소명이 절실히 필요하며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진로를 선택할 때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에 따라 선택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과 우리의 편안함, 안정성(육체적 편안한 삶)만을 요구하는 닉네임을 붙여서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글에 적혀있는 것처럼 모든 길에는 고속도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포장도로도 있고 낭떠러지가 있기도 하다. 목적지(삶의 소명)가 없는 여행은 정말 허무할 수밖에 없으며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아버지께서 대학교 가서 어중간하게 공부해서 학비 버릴 바에는 안정성이 확보된 고졸 공무원 채용 시험을 응시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사회복지공부를 꼭 해야겠다고 우겨서 결국 우리 학교 사회복지학과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복수전공으로 심리상담도 같이 배우고 있다. 나의 가슴이 움직이는 진로는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내가 진짜 어느 곳에서 열정을 쏟을 수 있을지 수없이 고민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목적지에 대해 후회가 없다. 과거에는 진로선택을 하는 결정에 있어서 그냥 아빠 의견에 따라야 할지, 끝까지 내 결정을 밀어붙이면서 싸워야할지 갈등이었지만 결국에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어서 오히려 감사했다. 우리 청소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육체적으로 편안한 직업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육체적 편안함의 이상으로 나의 소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사회적 명예가 있는 위치만을 쫓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감사와 기쁨이 있는 복된 삶이 나에게도 이뤄졌으면 좋겠고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복된 삶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나중에 청소년상담사가 되어서, 부모가 되어서, 기성세대가 되어서 청소년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크고 넓은 길이 아닌 10대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목적지가 있는 길을 알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삶의 길을 설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움직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칙이 존재하는데 그 원칙은 법률, 관습, 학습 등에 의한 자기만의 관점이기도 하고 역사일 수도 있는데 올바로 세워졌을 때 희망하는 목적지도 긍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원칙들을 어기고 역주행 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책을 보면서 우리 10대들의 사고방식의 도덕성이 많이 변질되고 이기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10억을 주면 일 년 동안 감옥에 있겠느냐는 질문에 40%가 넘는 청소년들이 ‘그렇다’라고 답했다는 것을 보고 충격이었다. 감옥을 가기 위해서는 비리를 저지르거나 사회적으로 위반된 죄를 짓는다는 것인데 청소년들은 이를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벌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오직 그 목적으로 역주행을 하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인지를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문정현 신부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아픈 곳”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더불어 세상의 중심도 ‘아픈 곳’이라고 하셨다. 정건희 교수님은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중심에서도 복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글을 남기셨다. 어쩌면 우리의 가치는 너무나 자신의 이익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그러한 삶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책에 적혀있는 것처럼 정말로 세상의 중심에서도 복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고 기성세대가 그러한 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과 더불어 나 또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 따뜻한 사회 구성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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