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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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점점 일그러져 가는 현 시대의 한국 교회와 교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하거나, 심각하게는 세상을 썩게 하는 모습을 더러 보여준다. 어떤 경우엔 세상의 도덕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 만들어낸 참상이다.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참된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두어야 한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서 속에 담겨진 기독교 신앙의 본질
많은 사람들이 신약성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라고 공감하고 있다.
기독교는 계시와 은혜의 종교
보통의 자연종교들이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셔서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어떠한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그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고, 인간은 주도권에 응답하는 존재라는 것을 표명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 앞에서 자기 한계를 설정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피조물의 관계를 지키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함으로써 그 관계를 깨뜨리고 말았다. 또한 그 순간 인간 아담과 하와의 죄가 사랑의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변질 시키고 말았다. 이처럼 죄 된 인간은 하나님을 애써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죽음과 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기회를 열어주신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 된 존재를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에 대해 인간의 책임을 물으실 때,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인간의 돕는 관계는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은 돕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관계로 등장하여 경쟁에서 실패한 가인은 경쟁자를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독점하고자 했다. 이로써 인간의 돕는 관계는 완전히 깨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안절부절 못하는 인간들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먼저 인간들에게 다가오셔서 아버지와의 자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하신다. 은혜(Grace)라는 말은 희랍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등의 뜻으로 쓰였다가 기독교에 들어와서는 대상자의 가치나 공적에 관계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게 되었다.
쉽게 풀이하자면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의 총화를 통틀어 은혜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은혜란 우리가 받을 가치나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과 사랑과 자비와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시편 84편 11절 말씀을 읽어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할 것 임이니이다”. 또 사사기 30장 18절에도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각각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는 진정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 사실은 욥기 10장 12절 말씀과 시편 94편 17-19절 말씀에서 알 수가 있다.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욥 10:12”.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 94:17-19”. 이 각각의 말씀에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 같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일순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로 새로운 존재가 된 기독교인들은 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진 것을 값없이 베풀면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우리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현대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안위나 배려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달리 남을 위하고, 배려하고, 베푸는 사람들도 더러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들을 위하여 섬기러 오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되려 가룟 유다가 은 30냥에 자신을 팔았을 때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군인들 앞에서도, 직면하게 된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지도, 하나님 뜻에서 물러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죄 속에 사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소망 가운데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도록 십자가의 죽음에 자신을 내놓으셨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 -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 막 10:45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 마 27:35-37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
기독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이다. 이는 기독교가 기독교를 믿는 것도, 신학을 믿는 것도, 목사나 성인 또는 다른 어떤 신앙인을 믿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고, 변해야 하는 인간의 공동체이다. 교회가 교회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이다. 신학 또한 시대정신의 흐름에 따라 응답하는 것이기에 그 강조점은 끊임없이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해서 변하는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 안에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신학의 근본적인 내용이자 주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신학이 신학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내용으로 담고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목사나 성인은 외향적으로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신앙적· 도덕적으로 조금은 더 나아보일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겉은 완벽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 지라도, 그 내면에는 진실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추악한 모습을 갖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성직자가 신자를 성희롱·성폭력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겉으로는 온화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모범적인 신앙인인 척 하지만, 그 속은 더러운 세상의 욕정과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위선적일 수 있는 인간이 기독교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오직 모든 인간을 근원적으로 새롭게 하고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독교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에 중심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고백을 한다면,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길과 진리와 생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