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인사 제목회적 돌봄의 내용 이자현 장인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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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목사 인사 제목회적 돌봄의 내용 이자현 장인 예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는 흔히 목사를 ‘목자’라고 부른다. 목사가 양을 치고 돌보는 모든 일의 목적과 내용이 모두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의 리더십에서 나온 것이다. 즉 목사의 목회적 돌봄은 교회 회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의 모든 측면 속에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돕는 것이다.
여러세기 동안 목사들을 “curates”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영혼을 치료하는(cure)사람, 또는 돌보는(care)사람이라는 뜻의 cura animar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소명은 그저 단순히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다. 목사들은 “예수의 이름으로”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목자는 양떼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양떼를 걱정하시는 하나님께도 책임을 지고 있다. 목사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도 염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돌봄과 차이가 있다.
또한 목사들을 가리켜 “parson”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사람”(person)을 뜻하는 라틴어 persona에서 파생한 것이다. 목사는 회중을 돌보는 교회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인간적 강점과 약점을 가진 인간다운 모습을 잃어버려서도 안되지만 목사들이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은 잊어버리면 안된다.
목사가 되어 보람 있는 일은 바로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돌봄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Ⅱ. 본론
1. 새 세상 이름 짓기
이스라엘 예언자들처럼 목사들은 오직 말만 가지고 새 세상을 만든다. 그래서 목사는 세상을 하나님의 세상이라고, 또 성령이 활동하시는 영역이라고 설명하기 위하여 말을 가지고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다. 목사들의 돌봄은 사람들이 물려받은 세상에 적응하고 순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다른 세상으로 움직여 가게 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설교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설교라는 목회사역 맥락 안에 목회적 돌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에게는 “복음”이라는 으뜸가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 복음에 맞추어 우리의 시대적 이야기들을 조율하는 것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말해주기 전까지는 무엇이 ‘돌봄’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그것과 아주 다른 돌봄 개념을 가지고 있다. 사도행전이 예수의 목회사역을 치유라고 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교회의 치유사역은 우리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문젯거리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단지 치료만 믿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 받는 것을 믿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기존에 허가받은 건강의료 기관과 갈등을 일으킨다.
어거스틴은 오래전에 “모든 것은 어떤 사람의 궁극적 행복관, 즉 우리가 창조된 궁극적 목적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달려있다”고 했다. 아주 편안하게 길이 들은 교회는 신학적인 언어를 버리고 세속적인 치료언어를 쓰기 쉬운데, 그것은 현재 자기성취를 목표로 삼는 지배적인 문화가 인정하는 구원의 방식이 세속적 치료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벨라와 그의 동료들이 본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우리가 “죄 많은” 사람이라든가, 또는 “의로운”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걱정을 버리고, 대신 “건강하지 못한”사람이 되는 것을 피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신학생들이 목회 길에 들어설 때 “사람들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사람들 도와주기”가 목회의 바람직한 근거가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풍족하고 소비를 제일로 아는 자본주의 문화 안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려 하는 것”은 극히 미심쩍다. 우리는 대체로 의식주와 같은 인간 기본문제는 거의 해결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열중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