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신학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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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은유 신학을 향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시몬느 베이유는 Waiting for God 에서 종교 언어의 문제를 고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종교인으로서 베이유는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하면서 동시에 신에 대한 자신에 어떠한 개념도 하느님과 같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다. 베이유의 이 말은 종교적 세계에 깊이 심취한 사람들의 위대한 전통에 자리잡고 있는데 특히 체험과 예배에서는 확신을 갖지만 하느님의 실재를 표현하는 적당한 언어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 모든 종교적 신비주의자들의 말이다. 다른 여러 종교전통 중에서도 특히, 유대-그리스도교는 침묵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실상 유대-그리스도교 전통 특히, 프로테스탄트는 “인간의 하느님”과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언어에 중점을 두었고, 그것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종교언어의 문제
선조들과는 달리 세속화된 사회에 살고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제는 하느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언어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경험적 차원과 표현적 차원 모두에서 확신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경험한다고 할 때 그것은 아주 사적이거나 매우 드문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즉 이 세계의 자연적이고 공적인 사태들은 하느님을 상징하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속에 내재된 신성을 감지하지 못한 언어는 하느님 언어를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부적합하다. 그렇기에 모든 종교의 신비자들은 인간의 언어와 신적 실재사이의 어떤 유사성도 거부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이는 종교적 정황과 무관한 종교언어는 어쩔 수 없이 우상적 언어, 혹은 부적절한 언어가 되거나 아니면 두 잘못을 모두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언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비판적인 정황은 하느님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존재들로서 폭넓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특정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해석학적 컨텍스트(interpretive context)다. 종교적 신앙 안에서 해석학적 컨텍스트는 언제나 “전통”의 제한을 받았는데 그것은 교회나 기타 제도를 의미했다. 그러나 종교문헌에 관한 역사비평이 도입되면서 우리는 성서언어와 이미지의 상대성을 깨닫게 되었다. 더 최근에는 관점의 다원성(역사적 시간, 장소, 계급, 인종, 성, 국적, 환경, 선입견 등 종교언어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에 의해)에 대한 인식이 심화 되면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해석적 측면들도 알게 되었다.
종교언어의 우상화
종교언어의 진리문제와 관련해서 하느님 언어를 문자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지속적이고 강력하고 보수적인 종교적 흐름이 있다. 이 운동에 의하면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성서는 오류가 없고 신의 영감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성서는 하나의 우상이 되고 만다. 이러한 종교적 문자주의가 우리시대에 횡횡하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는데 첫째, 문자주의를 견제할만한 종교적 명상과 기도수행을 망각했다는 것. 둘째, 실증적 과학주의가 협소한 진리관을 문화 안에 침투시켰다는 것. 셋째, 우리 선조들과는 달리 우리는 상징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언어의 부적합성
이 시대 종교언어의 두 번째 문제는 부적합성이다. 이천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비슷하지만 이미지, 문제, 쟁점, 생각은 상이하다. 그래서 종교언어가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배제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종교언어는 무의미 하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생겨났다. 특히 언어의 위력과 악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종교언어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은 이 점과 상관성이 깊다. 이러한 비판에서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언어는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에 세계를 명명하는 사람이 그 세계를 소유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남성들이 명명한 서구의 종교 세계는 여성을 배제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해석에 따르면 창세기 설화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서구문화의 모델로 이 문화는 여태까지 “남성의 세계”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둘째, 페미니스트들은 서구종교의 특별한 문제는 그 언어의 가부장적 성격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하느님”이 신의 호칭으로 자주 등장할 뿐만 아니라 신-인 관계와 인간-인간의 전체적 관계구조가 가부장적 틀로 이해된다. 대부분의 신적 이미지들을 남성화했고 더 나아가 서구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이는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한( one) 방식이 유일한(the) 방식으로 간주될 때 그 모델은 우상화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모델이 하나의 우상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하느님에 관한 많은 모델들이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여성적인 모델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셋째, 우리가 신적 이미지로 선택한 인간적 이미지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느끼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남성의 이미지를 하느님에게 사용했을 때 남성의 이미지와 사회적 지위가 그 중요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극미하게 발견되는 하느님의 여성적 이미지는 그 전통 안에서 여성적 자기 이미지가 저급하게 여겨졌음을 말한다.
종교언어는 소생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