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윤보선씨가 4대 대통령으로 취임 이에 사회는 극도로 혼란 경제는 마비된 상태이고 식량난에 국민들이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사회불안이 가중된때 군사쿠테타를 로이어지게되었음.
의의
이 419 혁명은 민주 학생에 의거 주도되어 전 국민으로 확산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에의하여 정권이 교체된 역사의 가장큰 의의를 갖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의미를 갖고있는 혁명을 정치가들의 분열과 야합으로 국민은 더 불안이 가중되어 일년후인 1961년 5월16일 군사혁명으로 이어지게된 비극이 있습니다.
전개 과정
이승만 대통령이 이기붕을 부통령을 만들기 위해 3인조선거/공개선거 및 투개표 부정을 저질러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킨 [3.15 부정선거 발생]
- 그 당시 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은 심장마비로 죽어서 대통령은 사실상 이승만 혼자 출마했고 당시에는 부통령도 국민이 뽑았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의 수하 이기붕을 부통령을 만들려고 갖가지 부정선거로 당선시켰다.
2.3월 15일 마산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부정선거 규탄대회를 열었다
- 3.15마산 학생의거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