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가족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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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의 가족사항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한글을 창제할 당시의 이야기나 정치사상, 업적 등 많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 중 내가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세종실록의 내용에 의하면 세종대왕의 가족사항이 굉장히 복잡하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이번 기회에 세종대왕의 가족 사항을 알아보려 한다.
2. 본론
세종대왕은 총 6명의 부인에게서 22명의 자녀를 두었 다. 이들 중 정비 소헌왕후 심씨가 8남2녀, 영빈 강씨 1남, 신빈 김씨 6남, 혜빈 양씨 3남, 숙의 이씨 1녀, 상침 송씨가 1녀를 낳았다. 우선 부인들에 대해 알아 보겠다.
(1) 소헌왕후 심씨(1395-1446)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 심씨의 본관은 청송으로 문하시 중 심덕부의 손녀이고, 영의정 심온의 딸이며, 어머니 는 영돈녕부사 안천보의 딸이다. 1395년 9월에 양주에 서 태어났으며, 1408년 충녕대군을 도와 가례를 올 려 빈이 되고, 경숙옹주에 봉해졌다. 1471년 삼 한국 대부인에 봉해지고 이듬해 6월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에 봉해졌으며, 같은 해 8월에 내선을 받아 세종이 즉위하자 12월에 왕후로 책봉되어 공비로 불려졌다. 하지만 1432년에 중전에게 별칭을 붙이는 것이 관습에 없다 하여 공비라는 호칭은 없어지고 그냥 왕비로 개봉되었다. 심씨의 아버지 심온이 세종 즉위 초에 영의정에 올라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청이 군국대사를 상왕인 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을 했다가 옥사가 일어났다. 심온은 이 사건의 수괴로 지목되어 수원으로 폄출되어 사사되었다. 이 때문에 심씨를 폐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그녀의 내조의 공이 인정되어 폐비 사태는 면하였다. 심씨는 8남 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향(문종)을 비롯하여 수양(세조), 안평, 임영, 광평, 금성, 평원, 영응 등 아들 8형제와 정소, 정의 등 딸 2자매가 그들이다. 소헌 왕후 심씨는 1446년 52세로 죽었으며, 그녀의 능은 영릉으로 세종이 승하한 뒤 합장하여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 되었다.
(2) 영빈 강씨
소생으로는 화의군이 있다.
(3) 신빈 김씨(1406-1464)
청주 김씨 첨지충추원사 김원의 딸로, 12세에 궁궐에 들어가 세종을 모셨고, 1447년 빈에 책봉되었다. 세종이 죽은 뒤에는 여승이 되었고, 1452년에 단종이 머리를 기르도록 명령했지만 듣지 않았다. 세조 대에 이르러 후한 대접을 받았고 큰 저택을 하사받기도 했다. 소생으로는 계양, 의창, 밀성, 익현, 영해, 담양군 등 아들 6명을 두었다.
(4) 혜빈 양씨( ? ~ 1455)
청주 양씨 경의 딸로 궁인으로 입궁하였다가 세종을 모셔서 귀인에 봉해지고, 다시 빈에 책봉되었다. 단종의 모후인 현덕 왕후 권씨가 단종을 낳은지 이틀 만에 죽자, 당시 젖먹이였던 둘째 아들 수춘군을 품속에서 떼어 유모에게 맡기고 단종을 정성을 다해 길렀다. 세종과 문종이 죽고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내명부의 어른으로서 국상중에 단종의 가례를 명령하여 성사시켰고, 수양대군과 대립하면서 단종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난 뒤인 1455년 6월에 가산을 빼앗기고 유배되었다가 같은해 11월에 교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