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전심의 제도 폐지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상 허가·재허가 심의는 형식적 절차로 전락해있는 반면, 내용 심의는 다원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감시하고 심의하는 공적 규제 장치로 방송위원회 안에 부문별 방송심의위원회가 있고, 각 방송사는 외부 관계자로 구성되는 시청자위원회와 자체심의 부서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자생적 시청자 단체들도 방송 내용을 모니터하고 평가하고 있는 등 내용 심의를 위한 다원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부가 방송을 규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개인이나 기업의 행위가 상호 이익 도모라는 원칙 안에 한정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둘 째, 미디어의 지나친 편견과 폭력이나 외설 혹은 구체적인 성행위에 대한 과도한 강조로부터 공중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방송사와 방송인에 의한 자율규제는 스스로 제정한 윤리강령이 가장 중요한 심의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어느 방송사나 내부에 심의실 혹은 심의부서를 두고 자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모니터, 심의하지만 그것이 적극적인 규제 행위로서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방송에 있어서 규제완화가 일반화된 정책 방향이라고 하지만, 앞으로 내부 심의기구에 의한 자율적 심의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내용 심의에 한정해 볼 때,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심의는 프로그램과 광고 내용을 일정한 기준에 의거하여 조사 평가하고 조치를 취한다는 점에서 방송내용심사 혹은 방송평가 개념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 방송 심의라는 말을 쓰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방송법을 보면 심의라는 용어보다는 프로그램 기준이나 지침, 방송 평가 혹은 질 통제와 같은 말들이 주로 쓰입니다.
우리는 흔히 심의라는 말에 대하여 부정적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심의 개념에 부정적 의미가 포함돼 있기보다는 심의제도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에 부각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최근 들어 방송과 통신 분야의 규제 완화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방송을 자유방임 상태로 두지 않습니다. 사회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형태로든 방송에 대한 내외적 힘이 작용하게 마련이며, 방송 심의는 그러한 압력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한 예로, 1989년 이후 KBS, MBC의 파업 투쟁이 벌어졌을 때 언제나 그렇듯이 주요 파업의 이슈로 사장 퇴진을 요구한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방송사 운영의 전권을 쥐고 있는 사장이 정치권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상황에서 방송사 내적인 자율심의가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방송사나 방송인 입장에서도 방송 심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또 타당성을 갖는 이유는 이것이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방송 심의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방송의 책임을 제고시키고 해로운 내용의 방송을 억제하고 이러한 방송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사회제도의 하나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파의 물리적 특성과 방송 미디어의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관리하기 위해 모든 국가는 방송 시장에 개입하거나 방송 내용을 규제 심의하고 있습니다. 그 예를 들어보면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 영국의 독립텔레비전위원회와 방송기준위원회, 프랑스의 시청각 최고위원회, 캐나다의 방송 및 텔레커뮤니케이션 위원회, 독일의 방송평의회와 TV평의회 등은 방송 공익성 유지를 위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대표적 공공심의 기구들이 있습니다.
방송에 대한 심의가 정당화 되는 이유는 방송의 공익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익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방송에 강제되는 것이 심의제도이고, 이러한 심의는 일반적으로 법제적 장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방송심의제도의 불가피성을 뒷받침해 주는 현상으로 다매채 다채널의 진전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케이블 방송의 경우 정보의 상업화 경향이 강해짐에 따라 외설과 폭력 프로그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무의미한 오락물이 과다하게 유통되어지고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정보의 진실성을 파악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업자들의 경영난이 가중됨에 따라 재방송 비율이 늘어나고 있으며 간접 광고 등에 대한 규제완화의 압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갈수록 시장에서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실적 상황, 특히 자체 경쟁과 타 미디어와의 경쟁, 광고시장 축소, 제작 비 앙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방송사들이 상업적 성공이 보장돼 있는 오락물을 제쳐 두고 자율적으로 높은 질과 품위, 다양성을 중심 가치로 하여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생길 수 있는 프로그램 저질화와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서 사전심의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