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조각은 불교조각이 대부분이지만 무덤에서 출토된 토우나 능묘 주위에 둘러진 십이지상 및 능묘조각, 그리고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 등에서도 조각적인 형태가 발견된다.
조선시대 불교조각의 시대적 배경
조선시대는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적인 이상사회 건설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교 미술은 쇠퇴한 미술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사회 전반에 걸쳐 불교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고, 특히 초기에는 왕실을 중심으로 화려한 불사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전통양식과 새로운 양식을 적절히 조화시킨 우수한 불상들이 많이 조성되었다.
조선 전기에 비해 조선 후기에는 신체 비례가 부자연 스럽고 단순하며 표정이 굳은 불상이 대부분이다, 이들 대부분은 판에 박은 듯 모습이 흡사하여 개성을 찾을 수 없지만 민중 불교로의 성격 변화 때문인지 인체적인 친밀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재료 면에서는 나무와 흙을 재료로 한 초대형 불상의 조성이 늘어나는 한편, 법당의 불성과 이를 장엄하는 후불탱화를 하나로 결한한 목각탱이라는 독특한 불상 형식도 유행하였다.
불상
불교의 진리를 깨우친 존재를 형상화한 것이 불상이므로 거꾸로 이‘불교 조각’이 갖고 있는 양감,면,표면구조 등의 조형 언어를 통하여 ‘부처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이해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진리의 깨우침’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을 조각이 라는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불상이다. 그러므로 조각으로 구상화한 불상이야말로 경전보다도 더 직접적인 불교사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중기,후기때의 불상 모습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도록 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초기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
왕실에서 발원한 불상이므로 일종의 궁정 양식으로 볼 수 있지만 얼굴 표정과 신체 비례 면에서 조선 초기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요소가 많다. 머리 정상에 계주가 강조되어 육계 끝이 뾰족하며, 어개가 좁고 허리는 가늘고 긴 반면 무릎 폭은 그리 넓지 않아 전체적으로 길쭉한 이등변삼각형에 가깝다. 좌상이면서 이처험 훤칠한 느낌을 주는 조선 초기의 불상은 매우 드문 형태이다. 나무의 질감 때문인지 날렵하면서도 딱딱한 느낌을 준다. 흔적만을 남기고 있는 밋밋한 가슴과 배 위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직선적인 옷깃은 조선시대 초기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끝이 뾰족해진 육체와 오른쪽 어깨가 반달 모양으로 걸쳐 긴 옷자락이 단을 이루며 접혀진 모습, 그리고 나팔 모양으로 넓게 주름 잡힌 왼쪽 어깨의 옷자락 처리 등에는 중국 명나라의 조각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측면에서 보면 호리호리한 느낌을 주는 정면관과는 달리 당당한 부피감이 느껴진다.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
조선 초기 1458년. 국보282호. 높이 72cm. 경북 영풍 흑석사
한국미술 문화의 이해. 예경출판사. 1994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조각1,2. 강우방 외. 솔출판사. 2003
네이버 백과사전 이미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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