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대왕은 공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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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대왕은 공학도였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조의 국가 경영의 큰 틀은 다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즉 과학 기술을 통한 전문 지식의 함양과 인재 발탁을 통한 리더십의 경영이 그 것이다.
조선 초 15세기는 부국 강병 정책을 추구하던 시기이다. 강력한 전제 군주들은 그 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확고한 군사 정책과 민생 안정 정책을 양립해야 했다. 본인은 “세종대왕은 공학도였다”라는 논제의 근원을 여기에서 찾고자 한다. 즉, 세종의 국가 경영은 과학 기술을 통해 백성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최고의 국가 경영자로서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 꾸준한 위민 정치를 추진한다.
(세종 4년 10월 24일)
사람의 고통에 민감했다. / “옥사(獄事)를 듣는 법은 진실로 마땅히 공평 무사(無私)한 마음으로 공정 명백히 물어야 할 것이며, 죽을 죄에 대하여는 살릴 수 있는 도리를 구할 것이요, 중한 죄에 대하여는 가볍게 할 수 있는 단서(端緖)를 찾을 것이니, 실정을 살펴 죄를 처단한다 하여도 오히려 실수함이 있거든, 하물며 이제 헌부(憲府)에서는 말이 위에 누(累)됨이 있다 하여,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정과 거짓을 잘 살피지 않고 위엄으로써 핍박하여, 죄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형(極刑)에 들어가게 하니, 만약 이를 믿고 죄를 처단한다면, 이 어찌 무고(無辜)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
그럼, 세종 대왕이 과학 기술을 통한 전문 지식을 구축하면서 사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며, 동시에 인재 발탁의 유연성이 주는 치세의 프리미엄은 무엇인지 살펴 본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경영으로 국내ㆍ외적으로 이바지한 성과를 도출해 보는 것이 이번 과제의 의의라 하겠다.
2. 본 론
① 세종의 전문 지식에 대한 열망
세종은 도성 축조, 천문 관측기구 제작, 각종 의학서 편찬, 신병기 개발, 도량형 제작, 역학(칠정산 내ㆍ외편)서 편찬, 금속 활자 제작 등 다양하고 폭넓은 치적을 이루어낸 군주였다. 그 중 세종이 과학 기술을 통해 전문 지식에 바친 열정을 사료를 통해 살펴 보도록 하자.
(세종 16년 8월 11일)
역산법을 아는 김빈 등 31인에게 흥천사에 모여 『강목통감』에 실린 일식을 추산토록 하다. / 역산법(曆算法)을 아는 사람으로 집현전에 입직하는 김빈 등 31인에게 명하여, 흥천사에 모여서『강목통감』에 실린 일식을 추산하게 하였다.
(세종 16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