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과에서 바라본 세종대왕
그러나 그런 세종의 정치에도 문제점은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그 문제점들은 주로 차기 왕좌와 관련된 것들이어서 세종 시대의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지만, 세종의 선왕이었던 태종이 세종의 즉위를 위해 행했었던 많은 일들과 비교해 볼 때 그것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가를 알 수 있다.
1. 차기 왕의 부족한 권력기반
세종은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아버지 태종의 전폭적인 지지와 세세한 물밑작업의 바탕을 등에 업고 있었다. 왕의 장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을 크게 평가한 태종은 여러 가지 빌미를 잡아 원래의 세자였던 양녕 대군을 폐위 시켰고, 세종의 외가와 처가를 모두 숙청하는 등 외척의 권력 연계도 사전에 다 막아버렸다. 또한 세종이 권력 기반을 다질 때까지 상왕이 군사권을 쥐어 세종의 든든한 뒤가 되어 주었다. 이처럼 세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 받았던 다양한 혜택들의 위에 세종 자신의 능력이 겸해져 뛰어난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종이 제위 할 때의 상황은 세종 때의 그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우선 제위 말년의 세종은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다. 너무 열정적으로 직무에 몰두한 결과 여러 가지 병을 얻었으며, 즉위 27년 되던 해부터 승하 할 때까지 세자에게 섭정을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세자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섭정을 한 기간 중에 오히려 병약한 세자를 대신해 세종이 다시 집무를 보는 등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이미 불안한 왕위를 놓고 벌어질 골육상쟁의 조짐이 보였다고 할 것이다.
조선 왕조는 이미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이 왕위에 오를 때 ‘왕자의 난’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일으킨 일이었다 할 지라도 세종이 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태종이 자신의 즉위 시에 행했던 일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세종의 아들들의 모습에서 비극은 확연히 보여지고 있었다. 병약한 세자와 그의 어린 아들, 그리고 야심 많고 출중한 능력의 둘째 아들. 아무리 문종이 어질고 학문에 뛰어나다 하더라도, 왜 세종은 다음 세대의 왕위가 불안해질 기미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물론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빨리 단명하리라고 생각지는 못했겠지만, 수양대군 즉, 세조의 능력은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결국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다. 세종대왕이 죽고 문종이 즉위하였으나 2년여만에 승하하고 그의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권의 기반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의 먹잇감이 되어, 결국 왕위를 내주고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육신과 같은 충신들이 있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후대의 왕위 찬탈과 관련된 다툼 자체가 전적으로 세종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연히 뒤를 이은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권력을 탐하느냐, 혹은 안정을 유지하느냐가 당대의 정치와 권력 관계에 더 주된 관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왕의 주변에서 권력을 탐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왕위에 적당한 아들을 가려낼 수 있는 선견지명의 부족이라든지, 차기 왕권의 강화를 위한 태종과 같은 물밑작업이 전혀 없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 인재 등용의 한계
사실 세종의 인재 등용에 대한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종과 함께 했던 신하들에는 황희, 맹사성, 김종서, 장영실 등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장영실과 같은 경우,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을 우선으로 하여 등용시킨 사례라는 점을 비추어 볼 때 그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세종 자신의 제위 기간에는 큰 장점이었으나 세종의 말년에는 ‘세대 교체 실패’라는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세종대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많은 신하들은 세종의 제위 기간 중에 명이 다 하였으며, 황희나 김종서 등은 세종이 승하할 당시 이미 힘을 쓰기 힘든 노인이 되어 있었다. 이들의 등용 당시에는 기존의 신하들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으나 정작 이들이 중심 관료가 되었을 때에는 새로운 인재들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재 등용에 관한 문제는 당대의 왕이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종이 왕위를 넘겨받을 때의 상황은 왕의 주변에 뚜렷한 지지기반이 없었던 데다가, 문종이 새로운 인재를 찾기에는 그의 명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된다. 세종이 이용했던 집현전과 문종을 위해 세운 첨사원 -문종의 섭정 시절 실무 처리를 돕기 위해 세운 기관- 등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또 나름의 문제가 있었다.
세종대왕의 정치 지도력, 김재영,
인터넷 사이트, 엠파스 백과사전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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