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식민통치의 아성인 조선총독부에서는 통치의 편리함을 꾀하는 방편으로 3차례에 걸쳐 조선어맞춤법을 조작하고 그것을 총독부 철자법으로 공식제정공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표음주의원칙에 선다고 하면서도 표음주의에 어긋나는 여러 가지 표기를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불합리와 약점 등 모순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조선어학회에서는 이러한 절박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어큰사전 편찬을 추진하는 한편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작성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930년 12월 13일에 열린 조선어학회총회에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상정시키고 토의 가결하여 12명의 위원을 선출하고 12월부터는 초안작성을 시작하여 1931년 7월 9일 까지 초고 61항목에 대한 원고를 탈고 하였다. 여러차례 수정 보충을 거쳐 1932년 12월에는 초안 항목이 91항목이 되었다. 이때 까지 위원들이 69회나 진지한 토의를 거듭한 결과였다.
이렇게 작성된 원고에 대한 제 1차 토의를 1932년 12월 26일부터 1933년 1월 4일까지의 10일간에 걸쳐 진행하였다. 여기서 결정된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표음주의적 방법이 아닌 형태주의적 원칙에 기초하여 맞춤법을 규정하기로 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수정보충된 맞춤법 통일안은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에 세상에 공포되었다. 이 때 공포된 통일안은 총론과함께 모두 7개 장에 65 항목으로 구성되었으며 부록으로 표준어와 문장부호에 9개항으로 되어 있었다.
2.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주요내용 및 특징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총론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1. 한글맞춤법은 표준말을 그대로 쓰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
2.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3.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웃 말에 붙여 쓴다.
이 맞춤법의 총론 첫 번째 조항에서 “한글맞춤법은 표준말을 소리내도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고 한데서 어음론적입장과 문법적입장, 다시 말하여 형태주의적 입장에 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론에서는 제 1장 한글 자모의 순서와 이름으로 시작해서 제 2장 된소리, 구개음화, 설측음(ㄹ),ㅅ 받침 단어, 제 3장 어간과 어미, 용언 및 체언, 품사합성 및 접두사 등 문법, 제 4장 한자음 표기, 제 5장 약어(준말), 제 6장 외래어 표기, 제7장 띄어쓰기 등이 차례로 기술되어 있고 부록에는 동사의 능동/수동형 표기및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문장부호가 정리되어 있는데, 이때까지 소리나는 대로만 적어오면서 통일되지 않았던 많은 단어들을 구개음화, 모음조화, 된소리 등을 인정하는 원칙으로 통일한 노력이 보인다. 이 첫번째 통일안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 문법의 기초를 제공해 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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