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목욕 문화 비교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유교적인 풍습으로 인해 목욕문화는 퇴색하고 만다. 유교적인 관습은 노출을 극히 꺼리는데-물론, 천민은 여름엔 강가, 냇물에서 씻고 겨울엔 물을 데워서 헛간, 부엌에서 씻기도 했지만- 양반들은 혼자 목욕할 때조차도 옷을 다 벗지 않은 채 필요한 부분만을 씻었다 한다. 목간통이라 하는 나무로 만든 둥근 욕조를 안방 또는 사랑방에 들여놓고 하인들이 운반해온 물을 끼얹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가 지내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1920년 6월 4일 평양에 대중목욕탕이 생겼는데 유교적 관습이 배어있던 그 당시 우리 나라 사람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홀딱 벗고 목욕을 하는 것은 천민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년 뒤인 1925년에 서울에 대중목욕탕이 생겼고 점차 대중목욕탕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후 1970년대 이후 아파트의 보급(서양식 가옥)이 확산되면서, 조금씩 경제의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청결과 치료(피로 회복)로서의 목욕이란 성격의 샤워 문화가 생기게 되었다.
요 근래에는 건강, 유희로서의 목욕이란 성격의 대규모의 기능성 온천, 목욕탕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일본 목욕문화의 유래 및 발전
일본에 불교를 전해 준 것은 백제로 고대 일본에도 불교가 전해지면서 절 안에 대중 목욕탕이 생긴 듯 하다. 이는 우리와 같이 몸은 물론 마음도 씻는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이 목욕탕은 일반인들에게도 무료로 개방되었는데 이용객이 많아지자 경제적 부담을 느낀 절에서는 시주의 개념에서 약간의 돈을 받았다고 한다.
이 후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자 시중에 대중목욕탕이 생겨나 영업을 시작했으며 그 후 일본의 대도시에는 점점 많은 목욕탕이 들어서게 된다.
조선 통신사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이 쓴 해유록에서는 일본의 혼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절이 아닌 시중에서 목욕탕이 생겨나면서부터 혼욕이 자연스럽게 행해졌으며 에도 시대의 혼탕문화는 퇴색문화로 바뀐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시대에는 남녀 혼욕을 금지하는 훈령이 내려졌지만 목욕탕 업주들은 이런 규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명치시대에 본격적으로 남녀 혼욕의 풍습이 금지되어 이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서양식 주택의 보급 확대나 과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보다 약간 작은 욕조에 유와카시키[湯沸かし機]라는 가스식 가열장치가 있어서 욕조 물의 온도를 유지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샤워는 따로 하고 입욕하기 때문에 욕조에 물 받으면 2~3일 정도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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