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첫 여행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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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첫 여행을 다녀와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난징의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장쑤 성의 성도. 중세 중국의 낭만과 현대화의 물결이 적당히 절충된 매력적인 도시로 여행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장강 하류 비옥한 삼각주 토지 위에 발달한 탓에 예로부터 강남 경제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모든 중국인들이 밥을 굶어도 난징 사람들은 결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난징의 역사를 살펴볼 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0개의 나라가 난징을 수도로 삼았지만, 정작 중국 정치사의 중심무대에 선 것은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 동안 난징은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태평천국의 난으로 도시가 쑥 되었고, 신해혁명 당시 공화국의 임시정부로 엄청난 변화를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최고의 재앙은 일본군들이 감행한 난징대학살일 것이라고 한다. 30~40만 정도의 사람들이 40여 일만에 학살당한 아우슈비츠를 능가하는 최대의 학살 이였다고 한다.
숱한 우여곡절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난징의 역사는 극과 극을 달렷다. 여행자들이 난징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바로 약간은 씁쓸한 맛의 풍요로움 때문일 것이라고 조사했다.
2. 中山陵
嘉院에 같이 온 중국학과 학생들과 중국에온 이후 처음으로 다 같이 여행을 다녀왔다. 가흥에서 4~5시간 정도 걸려 처음으로 도착한곳이 南京. 난징에서 식사를 마친 후 꾸불꾸불 산길을 조금 더 올라가니 中山陵이였다. 우리는 모두 첫 여행지라는 기대를 안고 가이드를 따라갔다. 근데 첫 여행지부터 만만치 않은 장소였다. 무수히 많은 계단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계단의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여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정상에 도착했고 위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정말 환상 이였다. 위에는 쑨원의 동상이 있었고, 안쪽에는 쑨원이 밑에 묻혀 있다는 동상이 하나 더 있었다.
(돌아온 후 中山陵 조사결과) 중국혁명의 아버지 쑨원의 능묘. 난징을 찾아 중산릉에 들르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난징에 들린 사람들은 한번쯤 반드시 참배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현재의 능원은 쑨원이 죽은 이듬해인 1926년부터 3년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한다. 평생에 걸쳐 절대왕정과 싸운 혁명가의 무덤이 황제의 능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쑨원의 무덤이 정말 화려하다. 8만㎡의 넒은 부지가 단 하나의 무덤을 위해 사용되었다.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서는 긴 참배로와 많은 오르막길, 결정적으로 392개나 되는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쑨원이 안치된 제당祭堂은 하얀 벽과 푸른색 기와가 인상적인 건물로 국민당의 깃발 청천백일기天白日旗를 상징한다고 한다. 중국인이 아닌 국민당만의 쑨원으로 만들려던 장제스介石의 욕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쑨원의 유해는 제당의 가장 안쪽. 누워있는 모양을 한 쑨원 동상 아래에 묻혀있다고 한다.
(그림 1) 쑨원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