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代의사회 문화발전
한편, 이러한 문화적, 과학기술적 성과들은 세종 시대 전반을 규정하는 여러 사회 정치적 조건들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때 그 역사적인 의미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세종 시대는 다른 어느 시대와도 달리 안정된 왕권과 정치질서를 유지했고, 새로이 국가이념으로 채택된 유학이 그 사상적 실천을 모색하는 시대였다. 그리고 유교 정치의 진전은 곧바로 유교적 교양을 갖춘 관료들이 사회질서의 중심에 서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유교관료 사회로의 진전을 의미했다. 여기에서는 세종대(代) 한글과 과학, 음악의 발전에 대해서 알아 보고자 한다.
2. 한글
우리 나라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예악(禮樂)과 문장(文章)을 지니고 있기는 하나 우리말과 중국말이 전혀 달라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자기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늘 걱정이었다. 더욱이 형벌을 다루는 사람이 그 범법한 사실의 내용 경위를 밝히기가 어려웠다. 옛 신라의 설총이 이두(吏讀)를 시작한 뒤로는 관부나 백성들 사이에서 계속 쓰였지만, 역시 남의 글자를 빌어서 쓰기 때문에 뜻의 표현이 역시 걸치고, 때로는 막히었다. 사람이 중대한 일을 맡아서 다루는 데 있어서는 우리말로써 제 뜻을 바로 표현하여, 그대로 바로 적을 수 있어야 했었다. 또한 세종이 나랏일을 맡아 볼 때 여러 가지 조건이 있어 백성에게 알려 주는 방법으로 우리 글자를 창안하게 되었겠으나, 궁극에는 우선 글을 모르는 무지한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세종은 백성을 다스리려는 정신에서 언문청(諺文廳)과 정음청(正音聽)을 궁중에 두고 정음(正音) 글자의 바른 음(音)
을 연구하고 한문으로 된 책을 정음자로써 한자의 음과 뜻을 밝히고, 그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언해(諺解)의 일을 하였다. 세종의 뜻은 25년(1443)에 이르러 정음 28자를 창제하게 되었다. 이것은 치민(治民)의 정신에서 우러러 나왔던 것이다. 28자는 무궁하게 활용할 수 있고, 아주 간결하면서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정밀하게 되어 있어서 널리 쓸 수 있다.
세종은 정음자가 배우기 쉬울 뿐만 아니라, 백성의 송사(訟事)에 그 사실 경위를 밝히는 데, 정음자를 써서 백성의 뜻을 제대로 알릴 수 있다고 일러주고 있다. 정음자는 그 소리의 맑고(淸) 탁한(濁) 것을 뚜렷이 구분하게 되어, 악가(樂歌)에서도 마음대로 얼마든지 쓸 수 있고, 바람 소리, 학(鶴)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짓는 소리까지 무엇이든지 소리나는 대로 글자로 표현해서 기록 할 수 있다. 이처럼 훌륭한 글자를 더 자세히 해석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 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정인지는 「해례」의 서문에서 훈민정음의 설명만 보면, 누구든지 선생에게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을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3.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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