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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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왜인지 역사는 아무리 공부해도 좋은 성적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역사는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나는 무조건 외우려고만 했다. 무식한 방식도 문제였지만,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내가 늘 실망스러운 역사성적을 받은 이유인 것 같다. 난 그런 내가 자랑스러워서 시작부터 역사를 잘 모른다고 선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무지한 내가 항상 부끄러웠고, 피하고 싶었고, 정말 싫었다. 단순히 지식이 없는 건 노력해서라도 커버 할 수 있는데, 상처로 남은 역사에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지 못하는 내 모습은 ‘척’으로도 가릴 수 없었다.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과제는 두려운 마음이 컸다. 첫째는 나의 무지함이 드러날 것 같아서 이고, 둘째는 그것을 어떻게든 포장하려다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이고 셋째는 나의 메마른 감정 이었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역사부분에만 관한 것 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이런 나를 오픈 하기로 했다. 그리고 논문을 읽어보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기쁜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공감 할 수 없었던 내가 공감한 것이 기쁘다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 할 때 했던 잔인한 일들은 익히 들어왔고, 그 당시 얼마나 어두웠던 시대였는지, 얼마나 빛이 간절했는지 일제시대에 쓰인 문학작품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인들을 상대로 강제로 노동을 하게하고, 생체실험을 하고, 성의 고귀함을 짓밟고, 학살했다. 노동에 동원되는 대상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었다. 여성들도 광산,군사 시설물 구축공사장,토목공사장,농장 등 다양한 곳에 동원 되었다고 한다. 사실 식민통치라는 시대상황이라면 크게 놀랄 것 도 없는 것이지만, 나는 굉장히 놀랐었다. 아마 일본군인들은 인간이라면 최소한이라도 느낄 수 있는 마음조차 쓸데없는 것 이라고 세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 이렇게 비인간적인 일에 동의하고 실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쩌면 인간의 지배욕망의 본질은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양 군도에 강제 동원된 한인 노무자는 5천명 이상이며, 주로 비행장 건설과 사탕수수 재배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총알받이, 자살테러, 굶주림 등으로 징용자의 60%가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고, 10년 이상된 장기 이주자에게 농지를 준다고 약속하였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턱없이 부족한 임금 수준과 조직적 통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자살테러를 강요 받았다. 종전 후에도 상당수가 귀환하지 못했으며, 현지에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강제동원이 된 이상 더 이상 사람으로써의 기본적인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항상 먼 나라의 난민들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 아파했고, 자살테러와 전쟁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아픔에는 정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심지어는 종전 후 에도 전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하니 그 고통은 더 했을 것이다.
나는 일본이 한 일에 대해서 무조건 분노하지는 않았다. 분노 할만한 일이 아니라서 분노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였다. 만일 강제동원 되었던 한인 노무자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영화로 만든다면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유독 우리역사에 공감을 못 했던 것은 공감하기 어려우리만큼 잔인하고, 큰 상처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규슈 탄광의 합숙소 벽에 쓰인 절규(출처 네이버 한국근현대사사전)
나의 마음을 가장 움직였던 것은 이 사진이었다.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어머니 보고 싶어. 이 3개의 문장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정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본토와 가족을 떠나 굶주리며 고된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자의 절규 안에는 정말 영혼이 담겨있는 것 같다. 모든 마음을 다해 모든 힘을 다해 절규했을 것만 같다. 나라면 죽는 것이 간절했을 것 이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의 정확한 규모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강제동원은 1939년부터 모집 · 관 알선 · 징용 · 근로보국대 형식의 노동력 강제동원, 지원병 · 학도병 · 징병 등 병력동원, 군속 · 군부(軍夫) · 일본군 ‘위안부’ 등 군 관련 동원 등으로 구분되었고. 동원된 지역도 조선 내는 물론 일본, 사할린, 만주, 중국, 남방 등 일본권 전역에 산재되어 있었다고 했다. 한반도 내에서 각종 명목으로 동원된 노동자 수는 연인원 600만 명 이상, 일본이나 전쟁지역으로 동원된 노동자 수는 139만 이상, 군인 · 군속 36만 이상에 이른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일본으로 동원된 노동자는 최소 70만을 넘고, ‘일본군 성 노예(종군위안부)’도 적어도 10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내 눈을 의심했다. 이정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동원되었을 줄은 몰랐었다.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한나라의 운명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해야 했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
내가 정말 후회되는 것은 당시 피해를 입으셨던 분들 중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움직임에 내가 지나치게 무관심했다는 것 이다. 그 외에도 내가 관심만 가졌더라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더 많은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아름다운 도움의 손길 속 에서 가끔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을 발견했었다. 정말 돕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식수준을 보여주고자 그런 운동에 참여하는듯한 사람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욕하기 보다는 그저 안쓰럽게 여기고 말았었다. 사실 나는 그냥 지나쳐버렸으니 뭐라 할 입장도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아팠던 역사의 회복 과정에 동참한 것 이기 때문이다.
나는 방학마다 해외봉사를 자주 갔었다. 그래서 나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고통에도 잘 공감하고 그들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나의 가까운 곳 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은 찾아보지도 않았다. 앞으로 나는 이런 도움이 필요한 곳 에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분들에게는 삶이었고, 나에게는 역사인 이 일들을 반드시 기억하리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