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백 년 역사를 한 몸으로 지키다 정몽주 1337~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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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 백 년 역사를 한 몸으로 지키다 정몽주 1337~139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정몽주가 활동한 시기는 고려 말로, 당시 명나라와의 갈등이 극심했으며 사회 현실은 엄청 어지러웠다. 1388년에는 명나라가 옛 고구려 영토인 철령 이북 지역을 인수하겠다는 이른바 철령위 설치를 고려에 통보했다. 이에 대해 최영은 외교적 교섭보다는 요동 정벌을 통해 명의 침략적 야욕을 꺾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그에 따라 출병한 이성계는 이 정벌에 동의하지 않아, 여러 장수들을 설득하여 회군하였다. 이것이 위화도 회군이다. 이 사건은 고려의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려 했던 신진사류들을 분열시킨 도화선이 되었다. 즉, 위화도 회군 이후, 신진사류들은 고려사회를 인정하고 보전하여 다시 고려를 일으켜 세우려는 체제 유신적 입장과 고려조의 국운이 다하였다고 판단하고 새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체제 혁명적 입장으로 나뉘었다. 전자의 입장을 지지한 대표적 인물이 정몽주이고,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 대표적 인물이 정도전이다.
혁명파는 정몽주 설득에 열심이었다. 혁명파 중 한명이었던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하여가’로 함께하여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설득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하지만 정몽주는 ‘단심가’로 자신의 고려에 대한 변함없는 일편단심으로 그를 거절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사건을 계기로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그를 살해한다.
Ⅱ. 정몽주의 생애
1. 유년기
정몽주는 경주 영일현 사람으로 자는 달가이고 호는 포은이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난초 화분을 안았다가 놀라 떨어뜨리는 태몽을 꿔서 몽란이라는 이름이었다. 9세 때 다시 어머니가 검은 용이 나무에 기어오르는 꿈을 꾸고 깨어나 정원에 나가 보니 마침 몽란이 나무에 오르고 있어 이름을 몽룡이라 고쳤다가 관례를 치른 후 다시 몽주로 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