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중국 인구 증가에 따른 변화
1. 중국의 인구 變遷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세계인구 증가율과 함께, 중국이 인구 또한 급속한 속도로 늘어나면서 중국을 거론 할때 歷史만큼이나 중국의 인구에 대해 큰 비중을 두고 있다. 改革, 開放의 물결이 중국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인구 문제는 세계적인 문젯거리로 부각되었다.
중국의 인구 變遷의 특징은 후진사회로서는 보기 드문 낮은 死亡率이 지속되어 있으며, 1970년대 초까지도 비교적 높은 出生率이 계속되었다. 중국의 인구 變遷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은 제 1차 産兒調節정책, 大躍進 運動및 대기근, 제 2차 産兒調節 정책, 文化 大革命, 晩稀少 運動, 한 자녀 낳기 운동 여섯 가지로 나뉜다.
1950년 초반까지도 毛澤東은 인구증가로 야기될 사회, 경제적인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사회의 특수층인 자본가 계급이 일반 다수 대중을 착취하지 않는 한 아무리 인구가 양적 성장을 하더라도 식량부족을 포함한 중국대륙의 무진장한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만큼 인구의 양적 증가는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낙관적인 태도를 表明했다.
1954~1956년에 걸쳐서는 周恩來의 주장에 따라 연평균 2% 이상을 유지하였던 높은 인구 증가율을 둔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毛澤東도 태도를 바꾸어 1957년 공식적으로 인구증가 抑制策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1958년 毛澤東의 大躍進 정책에 의해 인구의 양적 증가정책은 당분간 소멸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중국의 出生率이 급격히 하강하였는데, 이는 大躍進 운동의 실패로 인한 사회, 경제적인 불안과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중국대륙의 대기근 때문이었다.
大躍進 운동과 겹친 대기근으로 인하여 피폐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1962년 다시 제 2차 産兒調節정책이 수립되었으나, 1966년에 文化大革命이 일어나면서 또다시 무산되었다. 1971년, 周恩來는 晩稀少 운동을 실천에 옮겨 제3차 産兒調節 정책이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2000년에 중국인구가 12억 8천만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되어, 1979년 한 자녀 낳기 운동을 실천에 옮김으로서 제4차 産兒調節 정책을 통하여 인구의 양적 증가를 감소시키는데 주력하였다. 네이버 블로그 “중국의 산아제한 제도” http://blog.naver.com/bonny21?Redirect=Log&logNo=80006960020 (2011.5.16 인용)
《표-1》 중국 인구 1억 증가에 소요된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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