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답사보고서 제주도 역사
그 곳에는 재일 제주인에 대해서, 그들의 삶과 살아온 기록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들을 전시해 두었다. 재일 제주인은 어지러웠던 시절, 그들은 일본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밀항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향 땅을 등지고 떠나야만 했던 제주인들에게 수탈은 오랜 세월 몸에 익은 것으로 그럼에도 일제의 침탈이 심해지면서 제주인들을 더욱 더 궁핍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들의 군대환이라는 제주-오사카를 운항하던 배를 타고 제주의 각 기항지를 한 바퀴 돌고 일본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렇게 군대환을 타고 오사카로 건넌 제주인들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기 시작하여 제주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 따로 있을 만큼 이곳에서 조선시장도 있었으며 공동체 형성이 많았다고 한다.
박물관을 관리하고 계시는 재일 제주인 동포3세 이신 분을 만나 현재는 재일 제주인들은 어떠한 생활을 하며 지내는지 설명을 해주셨다. 차별 없는 일본 생활을 위해 일본 이름으로 개명을 하기도 하고, 너무나도 일본문화에 익숙해버려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재주 제주인에 대한 정보가 없어 처음에 관심도 없었지만 알면 알수록 새로웠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도 알고 있는 지식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항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후 제주대학교박물관이라서 제주대학교에 대한 박물관인줄만 알았던 곳에 재일 제주인 센터도 있었고 제주를 대표하는 다양한 상징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이 배방선이라는 바다의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무속의 굿의 의례를 의미하며 재물을 실은 짚배를 바다로 띄어 보내는 행위를 말한다. 이 짚배는 짚으로 만들어 배를 물색으로 장식하고 온갖 과일과 술, 동전, 제숙 등의 재물을 가득 실어 바닷가로 나가 멀리 띄어 한해의 조업안전과 풍어를 기원한다는 전통적인 의례를 처음 알았다. 다른 전시품들은 할머니 집에서도 본 물건들이 많이 있었고 대체로 책에서도 많이 보았던 것들이라 익숙하고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도 쉽게 알 수 있었고 제주의 역사에서는 어떠한 것들이 사용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음 제주의 역사를 직접 현장을 답사하여 알아보기 위해 제주 목관아지와 만덕기념관 그리고 조천 연북정를 다녀왔다. 제주 목관아지는 초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한번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너무 어렸을 때라서 마치 처음 가본 것 같았다. 그 곳은 고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정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로 중요한 행정지 이자 유적지이다. 이곳에는 관덕정이라는 곳이 있는데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또한 제주의 옛생활 도구 들이 있었고 조선시대 문화나 건축물 같은 것을 보고 멋을 알고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만덕 기념관을 찾아가보았는데 솔직히 나는 김만덕에 대해 아무런 지식 없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쌀을 받으면서 김만덕이라는 분에 대해 정보를 주었지만 관심이 없어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이 분은 신분제가 엄격하고 남성중심의 사회였던 조서신대에 여성과 기녀, 지방이라는 한계를 이겨내고 성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CEO라고 할 수 있다.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늘 검소하게 살면서 ‘풍년에는 흉년을 생각해 절약하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며 검소하게 살아야한다는 생활철학을 실천하여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김만년 흉년으로 제주도민이 굶어 죽어나가는 상황에 이르고, 배가 침몰하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하자 만덕은 굶주린 이웃을 위해 기꺼이 모든 재산을 내놓아 조선시대 처음으로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여성으로 가려진다‘는 만덕정신이 눈에 가장 들어오며 마음에 와 닿았다. 이러한 만덕에 행위로 정조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여 김만덕의 두 가지 소원이 있다고 하여 서울에서 왕궁을 보는 것과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는 두 가지 소원을 말하게 되며 당시 제주는 출륙금지가 엄해 특히 여성이 제주를 벗어나 육지로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조는 만덕의 선행에 대한 보답으로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김만덕의 모습을 바라보면 나에게서는 많은 반성을 들게 하였다. 이런 저런 체험을 하면서 나눔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박혔고 나눔으로 행하여 인생을 만들어진다는 말이 마음속에 떠나질 않았다.
제주 조천읍 바닷가에 옛날부터 제주의 관문이었다고 하는 연북정은 현재는 성곽 일부만이 남아있었다. 이곳은 육지에서 유배 되어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에서 올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임금을 향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연북정’이라고 한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1590년 당시의 조천관을 중창하여 쌍벽정이라 청하였다가 1599년 에 다시 건물을 고쳐서 연북정이라고 개칭 하였다. 건물은 네모꼴에 가깝고 높이 14자의 축대 위에 동남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축대의 북쪽으로는 타원형의 성관이 들러 쌓여 있다. 이곳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연북정은 망루의 용도로 지어졌을 듯싶다. 라는 글이 적혀져있었다. 이곳은 돌담을 쌓아 외부의 침략을 대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보인다.
제주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깊이 알 수 있었고 내가 너무 역사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자괴감이 들고 이번 사회사 수업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정보를 통해서도 역사의 흐름과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사회적으로 접근 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답사를 통해 내가 가보지 못하고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을 알아내는 재미가 있어 앞으로 제주의 역사뿐 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회학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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