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 철학의 사상의 기원
춘추전국시대에는 균형이 깨지면서 일치일란의 시대가 되었다. 이시기에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훌륭한 선생을 모신 다양한 학파가 혼한한 시대를 평정하기 위해 출연했다. 제자백가의 유형은 인간본성의 다양함을 반증하며 그들의 출연배경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정치적 배경이 있다. 중앙 권력의 외곽에는 수많은 제후들이 성장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자기의 권력과 사회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의례와 의식의 수행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또한 정치기구의 정비가 각국에서 정치상의 중요한 업무가 되자 여기에 인재가 요구되었고 인재의 교육에 이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둘째, 사회적 배경이 있다. 경쟁과 전쟁의 시대에서의 사람들은 평화와 질서에 대한 갈구가 널리 확산되었다. 그리고 봉건적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일부 특권층에 의해 독점되던 학문과 지식이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확대되면서 학식과 능력을 통하여 신분 상승을 모색하려는 개인의 강렬한 욕구가 곧 왕성한 문화 창조의 의지로 연결되었다. 셋째, 경제적 배경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수공업과 농업 기술의 발전, 상업의 발전에 따라 사상가들을 지원하는데 충분한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듯 춘추전국시대는 객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곳에 퍼져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 기사상이 나오게 되었으며, 기 범주가 발생하고 형성되는 시기이다. 기 범주의 기본 함의에 대해 초보적 규정이 이루어졌고, 제자 백가가 기범주에 대해 탐구하였으며, 기의 자연적 성질을 분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하늘 땅 사람이라는 체계 가운데에 놓고 전체 사유를 진행시켜 자연 사회 인간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법칙을 찾고 그것을 사회정치와 인생활동의 지도 원칙으로 삼았다. 장입문, 『기의철학』, 예문서원, 1992, 63 ~ 70p
3. 서경덕의 생애와 기철학
1) 서경덕의 생애
서경덕(徐敬德)은 성종 20년(1489) 송도에서 태어나 58세로 화담 서재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평생을 포의(布衣)로 은거하면서 학문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조선 중엽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자는 가구(可久),호는 복재(復齎)이며 송도의 화담(花潭)에 은거하였으므로 세인들이 화담 선생이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가빈(家貧)하여 14세가 되어 겨우 학문을 시작하였다. 그때『상서(尙書)』를 배우다가 기삼백조(朞三百條)에 이르러 선생이“이것은 이 세상에서 이해하는 이가 드물다”면서 가르쳐 주려 하지 않자, 물러나와 15일 동안 깊이 생각하면서 반드시 그 내용을 터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또 한 이런 것이 서경덕과 그 문인들의 독특한 학문 방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국사상연구회, 『조선 유학의 학파들』, 예문서원, 1996, 115 ~ 116p
2) 서경덕의 기철학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