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의 이해 공리의 원리와 자기 우선의 원리
공리의 원리와 자기우선의 원리
벤담의 공리주의는 두 개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공리의 원리’와 ‘자기우선의 원리’가 그것이다. 우선 ‘공리의 원리’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그 행동이 행복을 증대시키느냐 감소시키느냐에 의하여 판정하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정부시책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공리의 원리는 쾌락을 지향하고 고통을 기피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담은 이 원리를 자명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결코 이 원리를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우선의 원리’란 “인간은 자기의 행복에 최대로 공헌하는 행위를 수행하려는 성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원리가 뜻하는 바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개의치 않고, 자기의 행복만을 최대로 추구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사람이 공리의 원리와 자기우선의 원리를 따르면 결과적으로 행복의 사회적 총량이 증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리의 원리와 자기우선의 원리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쾌락의 계산
나아가서 벤담은 사람은 쾌락과 고통을 그것의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생산성, 순수성, 범위라는 일곱 가지 기준에 의하여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행위들이 동일한 양의 쾌락을 산출하면 그 행위들은 동일하게 선한 값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쾌락의 계산에서 벤담이 쾌락의 질적인 측면은 도외시하고, 양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우리는 벤담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벤담이 내세운 공리의 원리와 자기우선의 원리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행동원리요 개인적 판단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 원리들에서 어떻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사회적 원리가 도출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벤담은 인간은 개인적 존재일 뿐 아니라 사회적 존재요, 개인은 사회의 기본단위이고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체라고 했다. 따라서 개인들의 행복의 총량이 최대로 되면 사회적 행복도 최대로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리의 원리와 자기우선의 원리는 ‘이기성’에 기초한 개인적 원리이기 때문에 공리주의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타성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리주의에 이타성의 개념을 끌어들여 공리주의를 사회적 성격의 사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밀이었던 것이다.
사회적 공리주의
밀은 벤담의 이기적이고 개인적 성격의 공리의 원리를 수정하여 공리주의를 사회적 성격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밀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만은 아니고, 이해·동정·자비 등을 지닌 자기규제적이고 이타적인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공리주의에서의 행복은 자신만의 행복이 아니고 관련자 모두의 행복이요, 공리주의는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 사이에서 불편부당의 위치에 있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 마디로, 밀은 벤담의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기초한 개인적 공리주의를 인간의 이타적 본성에 기초한 사회적 공리주의로 발전시켰으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근거를 마련했던 것이다. 밀은 그의 ‘공리의 원리’를 때로는 ‘최대행복의 원리’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이 공리의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고 있기 때문에 공리의 원리에 따르는 행위나 결정은 바른 것이요 정의로운 것이며 도덕적인 것으로 된다. 밀이 행복을 낳는 행위는 선하고, 불행을 낳는 원리는 악한 것으로 간주하고서, 행복을 쾌락에 연관시키고, 불행을 고통에 연관시키고 있는 데서, 밀은 벤담의 기본 원리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양적 쾌락에서 질적 쾌락으로
밀은 쾌락에는 양적 차이만이 아니고 질적 차이도 있다고 주장하며 벤담의 쾌락의 계산에 반대하였다. 밀은 우리가 두 쾌락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우리는 그 두 쾌락을 계산하는 대신에 어느 하나를 선호할 뿐이며, 선호 이외에 ‘다른 법정은 없다’고 한다. 밀에 의하면 인간에게만 있는 지성·정서·상상력·도덕성과 같은 높은 단계에 의하여 얻어지는 쾌락은 동물적 욕망에 의한 쾌락과는 성질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일에서나 양과 질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쾌락에서도 양에만 의존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하여 밀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사람이 되는 것이 낫고, 배부른 바보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밀은 단지, ‘자격 있는 판단자들’과 ‘고상한 감정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언제나 질적으로 높은 쾌락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은 때때로 양립하지 않으며, 개인의 원칙과 사회의 원칙은 때로는 서로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리주의에서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공리주의에서는 개인이 전체에 매몰될 수 있으며, 전체의 행복이란 이름 아래 개인의 행복이 간과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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