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넛츠 - 감상문 - 최후의 판결
영화 Nuts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도 다루고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가 멋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Nuts는 법정 영화이다. Nuts의 주요 소재는 클로디아의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의 여주인공 클로디아는 어려서 고급집에서 자란다. 하지만 그녀는 돌연 성인이 되자 가출하여 콜걸이 되고 만다. 콜걸이 되어서 정당방위로 고객을 살인하여 1급 살인죄로 기소된다. 나는 여기서 비록 배경은 미국이지만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소위 사창가라 불리는 곳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여자 주인공이 남자와 싸우다가 유리조각 같은 것으로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여자 주인공은 1급 살인죄로 기소가 되는데, 1급 살인죄는 정말로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죽였을 때 1급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2급 살인죄가 있다. 하지만 2급은 직접적인 살인의 의도가 없었거나 충동적인 이유로 살해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봤을 때 여자 주인공은 1급 살인죄는 아닌 것 같다. 1급 살인죄는 정말로 의도를 가지고 죽이려는 것인데, 여자는 단지 정당방위로 방어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긴박한 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2급 살인죄로 기소를 했어야 맞는 상황인 것 같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판을 받아서 누명 아닌 누명을 벗길 노력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재판을 받으려 하지만 부모님이 막는다. 왜냐하면 재판을 하게 되면, 여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의문점이 든다. 재판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유권이란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라고 명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구속되거나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37조 2항에 의거하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가 임의로 개인의 재판하고 싶어하는 권리를 침해한다면 이는 국가가 개인의 권리에 침해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최근 헌법불합치를 받은 간통법이 그 예가 되겠다. 간통법은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를 받았다. 이러한 심한 죄도 이제는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데, 일반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거나 개인이 침해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클로디아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에 대해 공판이 열리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써 재판을 받을 권리 즉 재판청구권이 존재한다. 재판청구권이란, 헌법 제27조 제1항에 의거하여 모든 국민이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클로디아는 재판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개인임을 알 수 있다. 이 공판 중에서 클로디아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게 된다. 바로 클로디아의 의붓아버지가 클로디아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 들통나게 되었다. 바로 의붓아버지가 클로디아를 16살 때까지 씻겨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친아버지여도 이상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데, 의붓아버지가 몸을 성장기인 16살 때까지 씻겨 주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는 성폭행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성폭행을 당해서 클로디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은 그녀에게 욕실 트라우마를 갖게 하였다. 이러한 트라우마로 인해서 그녀는 이혼하게 되고 손님을 거부하게 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친엄마마저 불신하게 돼서 가족과의 관계마저 소원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는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은폐만 하려고 하는 모습이 나온다. 한편 그녀의 엄마는 클로디아에게 반복적으로 엄마는 클로디아를 사랑한단다 라는 말을 한다. 그들은 심리 중 클로디아를 진정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진정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엄연히 따지면 그들은 지금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그녀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한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법률을 적용받아야 한다. 재판을 받을 권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모든 국민에게 보장해줘야 할 권리이다. 클로디아의 부모가 단지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법의 둘레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행위는 용납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부모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녀를 법의 둘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기억속에서 클로디아의 엄마는 그녀가 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을 보고 지나친다. 이러한 장면은 엄마가 클로디아를 방치했음을 의미하는 장면이다. 레빈스키 변호사의 주장과 클로디아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판사는 클로디아가 지극히 정상임이므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판결을 내린다. 재판이 끝난 뒤 그녀는 힘들고 불행한 과거 때문에 망겨졌던 자신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클로디아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이를 정정하고 자신을 미세스 드래퍼 부인이라고 부르길 요구한다. 자기 양아버지를 거부하며 자신의 양아버지의 성인 ‘커크’를 거부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이것이 실화라는 것을 알고 더 소름이 돋았다. 실화라면 정말 이 여주인공의 실제 주인공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겪은 주인공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많이 컸을 것 같다. 어려서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나마 믿었던 친엄마는 방관한 채로 내버려뒀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도 했다. 보통 성폭행을 당한 여성분들은 그 기억이 죽을 때까지 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실제 사례의 주인공 분은 성폭행 당한 것으로 모자라서 부모님이 방관했다. 우리나라도 이성이 술과 같은 것에 의해서 상실되면 죄의 형량을 낮춰주고 있다. 이렇게 행하는 이유는 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책임능력과 의사능력을 물을 수 없으니 죄의 형량을 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취하는 것은 괜찮다고 느낀다. 하지만 예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필요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예시를 들어서 술을 마시고 미성년자를 강간한 사람은 그 때 술에 취해 의사능력과 책임능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상당부분 형을 감해 주었다. 나영이 사건이 그 예이다. 조두순이 술이 취했다는 명분으로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형을 감형해주었다. 진짜로 말이 안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법원의 판결에 모든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클로디아도 정신이상자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당방위로 인한 무죄는 인정할 수 있어도 정신이상자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는 것은 잘못 판결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상실하건 정신상태가 이상하건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그 결과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법은 당연히 이런 것을 고려하고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술을 마셨다 정신이 이상하다 등의 이유로 형을 감해주는 것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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