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작성에 앞서...
자료 수집을 위해 인터넷에 기재된 많은 글들을 참고한 결과 거의 대부분의 자료들이 연대기적이나 경제학적 이론에 입각한 분석들 이었습니다. 이전에 한국 경제 성장에 대한 연구를 해 본적도 배운 적도 없었던 저로서는 부득이하게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논문 짜깁기의 레포트가 되지 않기 위하여 최대한 제 나름의 창의적인 소견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기에 내용이 조금 부족하고 어설프더라도 이해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 서론
세계적으로 한국인의 기질을 나타내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빨리빨리”, “왁자지껄”, “동방예의지국”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기질들을 나타내고 또한 한국의 경제 활동에 투영되어 한국 나름의 경제 색깔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국인의 특성들은 한국 경제의 중요한 성장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 모든 세계인들이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고 한국인 스스로도 이것을 통해 우리의 잠재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분명 4강에 올라갈 수 없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국이 4강에 올라갈 수 있었을까? 이는 분명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엇이란 한국의 경제 성장, 그것을 가능케 한 한국인의 기질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한국 경제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 된 한국인만의 기질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러한 기질들이 어떻게 한국 경제 성장을 도왔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본론
앞에서 말한 한국인의 대표적인 기질을 3가지로 구분하여 각 기질에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한국 경제 성장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1) 대표적인 한국인의 3가지 기질 - 애국심과 단결심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애국심이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은 희생할 수 있다는 정신을 의미한다. 반드시 자신의 목숨이나 재산 또는 명예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한국에는 외제차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대만과 같은 경우 자국의 자동차가 나왔을 당시 대만인들은 이 차를 외면했고 15%의 낮은 가동률에 머물던 자동차 회사는 결국 일본 닛산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인들은 초기 품질이 형편없던 국산 자동차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재 자동차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애국심이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발휘되는지 알 수 있다. 수 없이 되풀이되는 전쟁의 순간, 일제치하의 압제 등 나라의 위급한 순간, 애국심은 모두 하나가 되는 단결심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강점인 애국심은 우리 경제 역사의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하나로 묶는 단결심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단결심으로 우리는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현재의 경제 강국인 한국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애국으로 뭉쳐진 단결심이 어떻게 한국 경제의 성공 요인이 될 수 있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해방 후 최빈국의 대열에 있던 한국은 원조 물품과 농업을 통해 어렵게 체제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1950년대 말 이후 거듭된 흉년으로 인한 농산물가격 폭등과 미국의 국제수지 저하로 인한 원조 격감은 한국 경제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원조 감소에 따라 원자재 공급도 줄어들고 정치와 사회의 불안도 겹쳐 기업의 생산 활동도 크게 위축되고 경제성장은 둔화되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5·16쿠테타를 통해 출범한 박정희 정권은 발족과 더불어 〈조국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경제의 자립적 성장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1962년부터 실천에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부 주도 하에 한국경제는 1960년대 후반부터 급속한 성장을 보이면서 점차 신흥공업국으로 변모하여 갔다. 이러한 개발을 위한 자본 조달의 원천이 외채였기 때문에 자본축적은 대외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은 그 당시 한,일 간의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서독에 광부를 파견하였으며, 중동에 건설노동자가 진출하고, 베트남전엔 한국 군인이 참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 뒤에는 애국이라는 신념 안에 하나가 된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단결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당시 외화획득을 위해 서독에 광부로, 중동의 건설노동자로 그리고 베트남 전쟁 참여를 위해 자원했던 많은 한국의 국민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이러한 모든 국민의 애국적 단결이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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