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형수
1. 작가의 생애
1916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2남 1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방랑벽이 있었고 아내에게 도끼를 휘둘러 상처를 낼 정도의 포악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함형수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상급반 시절 가담했던 민족독립운동으로 투옥되었는데, 그 감옥에서 아버지가 옥사(獄死) 한다. 아내에게 저지른 행동 때문이었다. 이러한 집안 사정은 그의 ‘부(父)부재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35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지금의 동국대학교)에 입학하고, 같이 입학한 서정주와 친해지면서 김동리와도 친해진다. 1936년엔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과 1936년 11월에 창간하여 1937년 12월 통권 2호로 종간되었다. 초대 편집 겸 발행인은 서정주(徐廷柱)였고, 동인으로 제1호 때에는 서정주·김달진·김동리·여상현·오장환·함형수·김광균 등이 참여하였고, 제2호 때에는 오화룡·이시복 등이 참여하였다.
창간호의 편집후기에서 서정주가 밝혔듯이 사람은 본래 개성과 구미가 각각 달라…우리는 우리 부락에 되도록이면 여러 가지의 과실과 꽃과 이를 즐기는 여러 가지의 식구들이 모여서 살기를 희망하였던 만큼 일정한 문학적 이념이나 방향 아래 모인 동인이라기보다는 각기 개성과 특성이 다른 시인들의 우호적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주로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노래한 시들이 두드러져 이들을 생명파라고 하였다.
을 창간(創刊), 2호(號)까지 계속된 에 시작(詩作)을 발표한다.
그러나 1937년경 궁핍한 가정 사정으로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그만두고 만주 원문(圓們)으로 가서 소학교 훈도시험(訓導試驗)에 합격하여 소학교 교사가 된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역시나 궁핍하였다.
만주 원문에서 잠깐 동안 유랑극단의 배우와 동거생활을 하지만, 그녀가 함형수 몰래 도망을 쳐버렸기 때문에 동거생활도 잠깐으로 끝나고 만다.
해방직후인 1945년 월남하는 열차에서 추락 사망하게 된다. 그때 이미 정신착란증세가 있었다.
8년 정도의 짧은 시작(詩作)을 하였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시집은 출간되지 못했고, 동인지 과 에 , ,, 등 17편이 있다. 이 중 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년행(少年行)] 시편이다.
2. 작품경향
2.1. 현실의 공포와 자의식의 유폐: 습작기
습작기의 시들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점은 화자의 내면의식의 세계가 비애와 우울의 정조를 띠고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애와 우울의 정조가 더욱 심화될 때는 거기에 공포까지 겹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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