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작가의 생애
1. 작가의 생애
이장희는 1900년 11월 9일 대구 서성로에서 이병학과 박금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이병학은 부인들의 사별로 세 번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12남 9녀로 21명이나 된다. 고월의 어머니인 박금련은 1905년에 3남 1녀를 두고 사망했고 고월은 5살때무터 계모슬하에서 많은 동생들과 성장하게 된다. 부친이 일제강점기시대에 중추참의원을 지내는 등 부유하긴 했지만 결손가정에서의 성장은 이후 고월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입힌 것으로 보이며 이후 그의 삶은 고독 속에서 내성적이고 자폐적인 것으로 일관하게 된다.
그는 1924년 5월 [금성]지에 시 ‘실바람 지나간 뒤’, ‘봄은 고양이로다’, ‘새 한 마리’, ‘불놀이’, ‘무대’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외에도 [신민], [여명], [신여성], [생장], [조선문단], [문예공론]을 통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장희가 교우한 문인으로는 양주동, 이상화, 오상순, 현진건 등 7,8인에 지나지 않아서 친구들과의 교우가 거의 없었다고 짐작 할 수 있다. 그가 대구에 와 있는지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이상화도 몰랐다고 할 만큼 그는 내성적이었고 비사교적이었으며 자신의 세계에만 칩거하고 있었다. 그는 온기도 없는 방안에서 금붕어를 자주 그렸고 죽기 전에도 철필로 금붕어만 그리다가 죽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 금붕어는 밀폐된 공간에서 말없이 살다가 가는 자신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2. 이장희의 시론
이장희가 평소 하던 말을 옮겨 적은 백기만의 [상화와 고월], [문학풍토기]를 통해 그의 시론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환상세계가 넓은 것에 반비적으로 그의 현실세계는 너무도 협소하였었다. 그의 교제는 문단에 국한하였고...그는 문학편중주의자이며, 문학에서도 시문학지상주의자이였었다. 진정한 시인 이외에는 전부를 속물이라 하여 대좌하기도 싫어하였다.
[문학풍토기]
그의 자폐성은 문학을 대하는 태도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테면 그가 베를레르나 보들레르, 예이츠를 좋아하면서도 자기 이외의 모든 문인을 속물이라고 규정한 데서도 나타난다.
누가 고월의 서울아씨의 간열핀 몸맵시같이 염려 섬세한 시풍에 대하여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월은 항상 이렇게 답변하였다. “시는 푸라치나선이라야 한다. 광채없고 탄력성 없고 자극성 없는 굵다란 철사선은 시가 아니다” 고월은 이러한 시관 하에 푸라치나선을 만들기에 무척 애썼다.
[상화와 고월]
그의 시관에 의하면 시는 불순물이 섞인 광채도 없고 탄력성도 없으며 자극성도 없는 굵다란 철사선이 아니라 푸라치나(백금)선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시작에 있어서도 티끌 없이 순수성만을 고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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