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월(古月) 이장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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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월(古月) 이장희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월 이장희론
1. 작가의 생애 와 작품 활동
고월(古月) 이장희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본명은 양희(樑熙)이다. 1920년에 장희(樟熙)로 개명하고 필명으로도 장희(章熙)를 사용했다.
고월의 출생은 1900년 1월1일로, 그의 집안은 대구의 부호였다. 부친 이병학은 친일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그의 친어머니였던 박금련은 이장희가 5세 때 사망하고 그는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고월의 부친인 이병학은 3번을 결혼하였으며 형제는 12남 9녀였다. 그중 몇 명은 유아시절에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기도 하였다. 고월은 대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툐중학교(京都中學校)를 졸업하였다. 그는 《금성(金星)》지의 동인이 되어 동지에 , 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고월의 문단 교우 관계는 양주동(梁柱東)·유엽(柳葉)·김영진(金永鎭)·오상순(吳相淳)·백기만(白基萬)·이상화(李相和)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는 우울하고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일부 친분이 있는 문인들만 교우하였고 작품도 다른 시인이 남긴 것보다 많이 남기지 못했다.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다가 1929년 11월 대구 자택에서 음독자살하였다. 죽기 얼마 전 부터는 방안에만 박혀 금붕어만 그리며 지냈다 한다.
「왜 하필 고월 이장희는 금붕어를 그렇게 많이 그렸을까?
어쩌면 그것은 어항처럼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 무기력한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중략… -1929년 11월 11일 중외일보에 기재된 글 중에서」 6p 참고자료 참조.
고월의 작품 활동은 1924년 ≪금성 金星≫ 5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새 한 마리>,<불놀이>,<무대 舞臺>,<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작품과 톨스토이(Tolstoi)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신민 新民≫,≪여명 黎明≫,≪신여성 新女性≫,≪여시 如是≫,≪생장 生長≫,≪조선문단 朝鮮文壇≫에 <동경憧憬>,<석양구夕陽丘>,<청천(靑天)의 유방(乳房)>,<하일소경 夏日小景>,<봄철의 바다> 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는 사후 1951년 청구출판사(靑丘出版社)에서 간행된 백기만 편의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실린 11편만 전해지다가 1970년대 초반부터 그의 시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봄과 고양이≫(李章熙全集, 문장사, 1982)와 ≪봄은 고양이로다≫(李章熙全集·評傳, 문학세계사, 1983) 등 두 권의 전집에 그의 유작이 총정리 되었다.
2. 작가의 시적세계
고월의 시에서 자아의 내적 세계를 그대로 토로하는 한편 자아를 배후로 소멸시킴으로써 주관적 감정을 사물이나 풍경 빛 현상으로 감각적인 전치를 시키는데 우수한 능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작품은 즉물시(卽物詩) 즉물시(卽物詩): 대상의 모습에 초점(물질적 외관)을 맞춘 시.
가 되거나 작자의 감정이 이입된 객관적 상관물 객관적 상관물 : 작품의 다양한 표현방식 가운데 하나. 어떤 사물의 특징이나 모양, 행동 등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담아내는 표현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