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와 유럽의 접촉은 극소수의 스칸디나비아인들이 그린란드에 들어왔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 가시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그러다가 발전된 구세계 사회와 신세계 사회가 본격적으로 충돌한 것은 AD1492년의 일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던 가리브해의 여러 섬들을 발견하면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전개된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잉카의 황제 아타우 알파와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최초로 마주치게 된 사건이었다. 아타우알파는 신세계에서 가장 크고 발전된 국가의 절대 군주였고 피사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대신하고 있었다. 피사로는 168명의 스페인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낯선 땅에 들어왔다. 그는 그 지역 주민들을 잘 몰랐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스페인들과도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으므로 때맞춰 원병이 도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에 아파우알파는 수백만의 백성이 있는 자기 제국에 버티고 있었으며, 더구나 다른 인디언들과의 전쟁에서 막 승리를 거둔 8만 대군이 그를 둘러싼 형국이었다. 그런데도 두 지도자가 얼굴을 맞대고 미처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피사로가 대뜸 아타우알파를 잡아버렸다. 피사로는 알타우일파에게 친구이며 형제로 맞아들이겠다고 했지만 광장에 들어서자 기독교를 모욕했다는 명분으로 원래 계획대로 숨어있던 보병과 부하들이 아타우알파의 신하들을 총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사로는 그로부터 8개월 동안이나 이 인질을 붙잡아 놓고 나중에 풀어준다는 약속 하에 역사상 가장 많은 몸값을 뜯어냈다. 그리고 그 몸값을 받은 후 피사로는 약속을 저버리고 아파우알파를 처형하고 말았다. 어째서 아타우알파의 압도적인 대군이 피사로를 사로잡아 죽이지 못하고 반대로 오히려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수많은 신하를 죽일 수 있었을까? 어째서 알타우알파가 스페인에 가서 황제를 생포하지 못하고 반대로 피사로가 카하마르카로 와서 아타우알파를 생포하게 되었을까? 피사로의 군사적 이점은 스페인의 쇠칼을 비롯한 무기들, 갑옷, 총, 말 따위였다. 그러한 무기에 대항하여 싸움터에 타고 갈 동물도 갖지 못한 아타우알파의 군대는 겨우 돌, 청동기, 나무 곤봉, 갈고리 막대, 손도끼, 그리고 몰매와 헝겊 갑옷 등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장비의 불균형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및 기타 민족들 사이의 수많은 대결에서도 역시 결정적이었다. 스페인인들이 말 때문에 얻은 엄청난 이득은 목격담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기마병들은 인디언 파수꾼이 배후의 아군에게 알리기 전에 간단히 앞지를 수 있었으며, 도망치는 인디언도 금방 쫓아가 쓰러뜨리고 죽일 수 있었다. 말이 돌진하여 부딪칠 때의 엄청난 충격, 조종하기 쉽다는 점, 그리고 신속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탁 트인 곳에서 보병들은 거의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낸 효과는 처음으로 말에 맞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들로서는 스페인 군사 장비가 얼마나 큰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카하마르카 전투에서 168명의 스페인인은 500배에 달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대군을 격파하고 수천 명을 죽이면서도 단 한 명도 전사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피사로와 잉카족의 다른 전투나 초기에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벌어졌던 싸움은 불과 수십 명의 유럽 기마병들이 번번이 수천 명의 인디언을 참패시키는 대살 육으로 끝났다. 아타우알파는 어쩌다가 카하마르카로 오게 되었을까? 아타우알파의 군대는 잉카족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킨 결정적인 내전에서 막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 당시 카하마르카에 있었던 것이다. 파사로는 그러한 분열의 이용가치를 재빨리 파악하고 십분 활용했다. 내전의 원인은 천연두의 유행에 있었다. 그 전염병은 스페인 이주민들이 도착한 후부터 퍼지기 시작하여 잉카황제와 대부분의 신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곧이어 후계자로 정해져 있던 왕까지 죽게 된 것이다. 그들이 죽어버리자 아타우알파와와 그의 이복형제의 제위다툼이 시작되었다. 만약 그러한 유행병이 없었다면 스페인인들은 하나로 단합된 제국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아타우알파가 카하마르카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 하나를 제시한다. 그것은 상당한 면역성을 가진 침략자들이 면역성 없는 민족에게 퍼뜨리는 질병이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흑사병을 비롯한 유럽고유의 전염병들은 다른 대륙의 많은 민족들을 몰살시킴으로써 유럽인들의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정복요인들을 더 살펴보면 첫 번째는 유럽의 해양기술 덕분이었다. 그 기술로 만들어진 배가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대서양을 건너 파나마로 왔으며 파나마에서 다시 태평양을 따라 페루로 넘어왔던 것이다. 아타우알파에게는 그러한 기술이 없었으므로 남아메리카를 벗어나 해외로 팽창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파사로가 카하마르카에 오기까지는 배와 더불어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도 필요했다. 그래야만 스페인이 자금을 마련하고 그 배들을 건조하고 선원들을 고용하고 장비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잉카 황제에게도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은 있었지만 그 경우에는 오히려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생포함으로써 잉카족의 명령 계통을 고스란히 움켜쥐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인은 문자의 존재였다. 정보는 입으로 전하는 것보다 문자를 사용할 때 훨씬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더 자세히 전파할 수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와 코르데스의 멕시코 정복에 대한 정보가 곧 스페인으로 전해지면서 스페인들이 신세계로 밀려들었다. 편지나 소책자 등 신세계로 가고자 하는 동기뿐만 아니라 항해에 필요한 상세한 지식도 제공했다. 이로 인하여 직접적인 원인은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인이나 그들의 군사력 또는 의도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가 가진 빈약한 정보는 입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것도 피사로의 부대가 해안에서 내륙으로 들어오고 있을 때 그들을 방문했던 칙사에게서 들은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칙사는 스페인인들이 가장 흐트러져 있을 때의 그들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는 아타우알파에게 그들은 결코 전사들이 아니며 인디언 200명만 맡겨 준다면 모조리 묶어 들일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므로 그 스페인인들이 사실은 무서운 적이며 건드리지 않아도 자기를 공격하리라는 것을 아타우알파가 짐작조차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그는 파사로의 부대가 독자적으로 침략을 자행한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정복을 노리고 있는 세력의 선봉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생포한 사건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지 못하고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게 된 직접적인 요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피사로가 성공을 거두게 된 직접적인 원인에는 총기, 쇠무기, 말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 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상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그리고 문자 등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는 그러한 직접적인 요인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 요인들 덕분에 근대의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어째서 그와 같은 직접적 이점들이 신세계보다 유럽에 더 편중되었을까? 어째서 잉카족은 총과 쇠칼을 발명하거나, 말 못지 낳게 무시무시한 짐승을 타고 다니거나, 유럽인들에게 저항력이 없는 질병을 지니거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와 발전된 정치조직을 만들어 내거나, 수천 년에 걸쳐 기록된 역사로부터 경험을 얻거나 하지 못했을까?
제 4장에 대한 요약
식량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각 대륙의 민족들이 언제 어떻게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는가 하는 시기와 지리적 차이는 그 이후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을 결정한 주요 원인이었다.
1980년대 몬태나 서남부로 온 스위스인 프레드허시라는 사람은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장을 일으킨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가 도착할 당시만하더라도 그곳에서 원래부터 수렵 채집민으로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동료일꾼들 중에는 레비라는 블랙풋족 인디언이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술을 마시고 와서 "지옥에나 가라 프레드 허시, 그리고 스위스에서 너를 태우고 왔던 그 배도 지옥에서 떨어져라!" 그 말은 미국 서부 정복을 인디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통렬히 깨닫게 해주었다. 사냥꾼이며 유명한 전사들이었던 레비의 부족은 이주해 온 백인 농부에게 땅을 빼앗겼던 것이다.
현생인류의 조상들은 블랙 풋 인디언들이 19세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순전히 야생 동물을 사냥하거나 야생 식물을 채집하는 것만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했다. 그러다가 몇몇 민족이 비로소 식량생산이라는 것(즉, 야생동식물을 가축화, 작물 화하여 그 가축과 농작물을 먹는 일)을 시작한 지는 아직 11000년도 채 안 된다. 식량 생산이 시작된 시기는 민족마다 달랐다. 이장에서는 우선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프레드 허시 동족들이 레비의 동족들을 쫓아낼 수 있게 했던 여러 이점들과 식량 생산 사이에 존재하는 주요 연관성들로부터 더듬어 보기로 하자. 첫 번째 연관성은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소비 할 수 있는 열량이 많다면 그 만큼 사람들도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야생동식물 중에서 인간이 먹을 수 있고 사냥 또는 채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은 소수에 불과하다. 소화가 안 되거나, 독이 있거나, 영양가가 낮거나, 채집하기 어렵거나, 사냥하기엔 위험해 음식으로서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육지에 존재하는 생물자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목질과 잎인데, 그것들은 우리가 소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둥물종과 식물 종들만 선택하여 키움으로써 땅 전체 생물자원의 0.1%가 아니라 90%를 차지하게 한다면 단위 면적당 얻을 수 있는 식품열량은 훨씬 더 많아진다. 따라서 같은 면적의 땅에 의존하여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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