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운동
1. 항일의병운동의 구분
2. 항일의병운동의 의의 및 성격
3. 항일의병운동에대한 생각
1.항일의병운동의 구분
1)전기의병운동(을미의병운동)
*1895년 10월 8일 왕비인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당한 을미사변을 계기로 크게 일어났다.(이미 1894년에도 의병항쟁이 있었다) 이를 을미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을미의병운동이라 한다. 더욱이 이때 국왕인 고종이 정병하라는 대신에 의해 머리털(상투)이 잘리고 옷을 찢기는 참을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이에 분노한 선비들은 앉아서 나라의 멸망을 기다릴 수 없다고 외치며 의병을 일으키게 되었다.
(오랫동안 의병사를 1895년 민석봉의 의병에서 출발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에 1895년 보은에서의 기병이 의병사의 효시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즉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진행될 때, 일본군이 침입해 경복궁을 점령한 갑오변란이 있었는데 이 때에 의병이 일어난 것이 확인된 것이다)출처-국회전자도서관논문
*의병 운동은 19세기 말경 외국의 문물을 물리치고 우리의 인습과 전통을 지킨다는 위정척사사상에서부터 싹텄으며 위정척사파들은 유교를 공부하던 순수한 유생선비들이었다.
*을미의병이라 이름 붙여진 이들은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들이 주도하였고, 일반 농민과 동학 농민군의 잔여 세력이 가담하였다.
*1985년 10월 이후부터 다음해 말까지 일어난 의병운동
충청도에서는 이항로의 제자인 유인석이 이강년, 서상열, 홍사구, 안승우, 김백선과 운량관 이종국 등 부하장수를 이끌고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일대에서 일본군 섬멸에 앞장섰다. 주로 친일파 벼슬아치, 탐관오리, 일본인 등을 잡아죽였다.
그 외 홍성의 김복한, 안병찬, 단양의 이춘영 등이 도내 다른 지역에서 일본군 섬멸에 힘을 기울였다.
경상도에서는 이강년 등이 문경을 중심으로, 허위등은 서산에서, 권세연, 김도화 등은 안동에서, 노응규 등은 진주에서 각기 일어났다. 그밖에도 전라도 황해도 평안도 함격북도 등지에서도 의병들은 크고 작은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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