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받는 자들의 내일
영화속에 나타난 소수자. 그들의 소회
이번에 봤던 영화 속에 나타난 소수자는 내가 생각하기론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사회 속에서 대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잘못된 편견으로 차별받고 매 몰린 소수자와 어떤 특정 집단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은 무시당하고 집단의 질서에 자신을 매몰시킨 소수자로 볼 수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주인공 베킷씨는 동성애자에 에이즈 환자다. 그는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명예도 잃는다. 이런 일은 그가 속해있는 곳이 영화라서 그렇게 설정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현실에서도 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속 베킷의 상사들이 너무나도 얄미웠지만 돌아보면 우선 나부터도 에이즈 환자가 만약 내 주변에 있다면 꺼리는 마음이 들고 그런데 어떻게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이 옳지 못하다고 욕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추측컨대 사회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반응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베킷씨처럼 ‘사회적 죽임’을 당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한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이 표현에 공감이 간다. 생물학적으로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이미 에이즈 환자는 에이즈 판명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주검과 같은 존재가 된다. 여기서 서글픈 것은 그러한 죽임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타인들에 의해 다수에 의해 강압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사회적 죽임에 일종의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이즈가 타액을 통해서만 전염되고 보통의 일상생활로는 전염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아는 지식조차도 편견과 선입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영화 속에 또 다른 주인공 덴젤 워싱턴처럼 잘 몰라서 반감을 가진다면 그것은 애교로 봐줄만 하다. 톰행크스가 연기하고 있는 베킷씨는 동성애자에 에이즈 환자이다. 그가 동성애자이고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직장 상사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명예와 일을 빼앗긴다는 설정은 상징적으로 사회속에서 소수자들이 나머지 다수자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퓨 굿맨에 나오는 도슨상병은 위에서 말한 베킷 씨와는 약간 다른 성격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그에게 하달된 명령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조직의 질서와 억압에 자신의 가치관을 포기하고 살인이라는 극악의 악행을 저지른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가 조직의 질서에 충실한 것뿐인데 그가 무슨 죄냐고 그의 행동에 아무런 반감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개인으로서 아무리 조직의 질서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살인이라는 행위를 할 수 있냐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 혹은 그의 행위보다는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원망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소수자
영화에서 나타난 베킷씨나 도슨 상병 같은 소수자를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면,
우선 떠오르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에이즈 환자와 음지에서 양지로 조금씩 불거져 나오는 동성애자들 특히 얼마 전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동성애 커플이 떠오르고 또 얼마 전 내부고발자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십자 혈액원 사건의 주인공 등이 떠오른다.
자신이 에이즈 환자로 밝혀지는 순간 자신의 사회생활은 끝장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그들이 에이즈에 간염 되었다는 것도 밝히지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못 받으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성정체성이 그렇게 정해져 버린 이유만으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친구들에게 버림받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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