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의 국자감 진흥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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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종의 국자감 진흥책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예종의 국자감 진흥책에 대하여
I. 머리말
고려시대에서 예종대는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국자감이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큰 변화를 보인 시기였다. 과거출신 신진관료들이 다수 배출되고 개혁 세력이 형성됨으로써 선대에 침체되었거나 변화를 시도했던 국자감이 변혁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유학진흥책을 통하여 교육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자감은 설치 이래 유학을 교육하고 예비관료를 양성하는 최고의 국가 교육기관으로 운영되어 왔고, 과거와 관련된 주요한 기능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과 문벌귀족들이 국자감의 운영 방향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종대에 들어 국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자감이 점차 침체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문벌귀족들에 의해 사학이 설립되면서 과거에 응시하려는 자들이 사학을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결국 관학의 쇠퇴로 이어졌으며 관학, 곧 국자감의 쇠퇴는 왕이 필요로 했던 ‘인재양성’이라는 교육목표의 실현과 관리 등용에 있어서 일정한 한계를 보이게 되었다.
이에 예종은 국자감개혁을 통해 관학을 중흥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안인, 곽여, 호종단 등의 측근세력을 동원하였으며, 칠재를 설치하고 북송의 삼사제를 수용하는 한편, 양현고를 설치하는 등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와 같은 국자감개혁을 통해 예종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자겸세력을 중심으로 한 문벌귀족들은 개혁으로 인해 자신들의 세력 기반인 사학이 침체되고 정치적 세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여, 예종의 국자감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II. 예종의 교육개혁
1. 교육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예종의 인식
문종이후 문벌귀족 세력이 강화되면서 집권층 자제들은 국자감을 기피하고 사학12도에 진학하여 과거를 위한 과업교육에 전념하게 되고, 국자감의 침체는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자감은 존폐 문제가 거론될 정도였으며, 과거운영은 귀족들의 특혜 보장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예컨대 국자감에는 문무관 3품 이상의 자제, 태학에는 5품 이상의 자제, 사문학에는 7품 이상의 자제만 입학할 수 있도록 재편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귀족가문의 관직 세습을 보장해 주는 제도인 음서가 보편화되고, 문벌귀족들은 이를 통해 가문의 세력을 강화하고 문벌귀족 중심의 사회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즉위한 예종은 문벌귀족의 교육독점을 지양하고 새로운 왕권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과감한 교육개혁을 실시하였다. 즉위 후 예종이 설정했던 정국 운영의 기본 방향은 숙종 후반의 개혁정책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예종의 즉위 직후부터 문벌귀족들은 천수사에 대한 역의 금지, 화폐 사용의 중지를 요구하는 한편, 이자의의 난과 관련된 자들의 사면까지도 요구하였다.
이에 예종은 일단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였으나, 곧바로 천수사의 역을 재개하고 화폐 사용을 강행하였다. 무신우대정책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예종은 관료 체제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신진관료들의 진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교육개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예종은 국자감의 교육시설 확충 및 삼사제의 수용, 칠재의 설치, 양현고의 설립 등 획기적인 정책을 수립, 시행하였다. 그러나, 숙종의 개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당시 문벌귀족들은 예종이 이를 계승하는 데 대하여 경계의 태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예종 4년 여진정벌의 실패와 윤관의 퇴진, 그리고 예종 6년 윤관의 사망 등으로 인해 숙종의 유지를 계승하려는 왕의 정국운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예종은 교육에 대한 강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었다.
여진 정벌에 실패한 후, 예종은 급진적인 제도 개혁에 대한 문벌귀족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여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따라서, 예종은 문벌관료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곧 유학진흥책으로 나타났다.
2. 교육개혁의 목표
참고문헌
IV. 참고 문헌
· 이중효(2010), ‘고려의 인문교육-국자감 개혁과 인재양성’, 「경제·인문사회연구회」.
· 박외현(1983), 고려 과거제도의 정치사회적 기능, 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 신천식(1995), 『고려교육사연구』, 서울 : 경인문화사.
· 목영해, 양진건, 이항재, 한규원(2007), 『교육의 역사와 철학』, 서울 : 교육과학사.
· 이대성(2008), 고려 예종의 교육개혁 연구, 석사학위논문,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