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연구 제주43
1. 4.3 3세대
근대 제주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4.3’이다. 해방이후 제주도 인구의 약 1/10이 학살 등으로 인해 사라졌다. 엄청난 인명피해는 인구변동 뿐 만 아니라, 주민들의 의식과 삶의 모습 등 지역사회 전 분야에 걸쳐 대를 이어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4.3은 현재적 사건이기도 하다.
필자는 스스로 4.3 3세대라 부른다. 1세대는 당시 사회의 주요 주체로서 4.3을 겪었던 사람들이고, 2세대는 그들의 다음세대로서 4.3에 대한 기억은 갖고 있으나, 민주화되기 이 전까지 그 사실들을 숨긴 채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3세대는 1세대의 손자요, 2세대의 자식으로서, 4.3에 대한 체험과 기억도 전무하고, 그에 대한 학습도 거의 받지 못한 세대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 세대 들어서 4.3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4.3을 대하는 태도는 앞 세대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금강산 관광 및 개성관광 등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분위기가 분단이후 가장 활발한 상황이어서 그만큼 ‘레드 콤플렉스’도 낮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4.3 3세대는 현재적 사건으로서 4.3을 다루는데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3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4.3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 4.3의 진상과 그에 대한 연구
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이다.
해방공간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군정통치를 받던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해서 각기 다른 근대국가(공화국)를 만들려는 외세와 중앙권력의 시도를 지역차원에서 거부하고 저항한 사건이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중앙집권세력의 이념적 성향은 (극)우익인 상황에서, 제주도내의 주요 세력은 좌익이었기 때문에 더욱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이는 이승만과 조병옥 등 당시 권력의 핵심들이 내뱉은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전체를 다 죽여도 좋다는 것은 4.3이 명백히 ‘제노사이드’의 성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4.3 초기 주요 저항세력인 ‘무장대’는 500여명에 불과했으나(장윤식, 2005), 이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간인이 1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무자비한 진압이 자행됐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고립된 섬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킨 것 자체가 처음부터 ‘좌익적 모험주의’의 발로가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무장봉기에 대응한 토벌의 무시무시한 결과는 저항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4.3에 대한 연구는 4.3 발생 당시에 초점을 맞춘 것들로 시작된다. 가해자(국가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은 모든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4.3의 공식적인 종료 후, 사건이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도 등장하고 있다.
김종민(1999)은 전문연구자는 아니지만, 지역신문기자로써 4.3에 대한 취재를 통해 지난 50년 간 4.3 진상규명의 역사를 정리하였고, 더불어 4.3이 제주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의 하고 있다. 특히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후속 연구자들로 하여금 자료 선택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박찬식(2008) 또한 4.3 연구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더욱이 4.3이 제주에 끼친 영향으로 1) 레드콤플렉스, 2) 허무주의, 3) 멸시배타성, 4) 불신풍조 등의 피해의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서, 근대 제주인들의 의식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김성례(1999)와 고성만(2005)은 4.3의 진상규명과정에서 각기 주장되어 대립과 충돌 또는 포괄한 담론들을 정리하였다. 김성례는 위령제와 백조일손지지, 심방과 관련된 사례를 중심으로 근대국가의 성립과 폭력에 대해 논의하였고, 고성만은 무장폭동론과 항쟁론, 양민학살론, 화해와 상생론 등 현재적 사건으로서 4.3의 성격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김성례의 경우, 근대국가 성립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폭력과 그 희생양을 이용한 안정적(보수적) 정치체제구축이라는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른바 “피로써 지켜낸 자유민주주의”라는 우익의 구호는 이를 뒷받침한다. 그중에서 국가권력으로 작동한 군경 및 민보단 희생자 이외에, 이들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 피해자들까지도 ‘희생양’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전범들을 기리는 공간인 야스쿠니 신사와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당시 전범들 뿐 만 아니라, 강제로 징병징용당한 조선인 사망자들의 위패까지 합사해놓은 것은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에 따라 그들을 “2번 죽이고”있는 것이다.
3. 4.3과 사회적 방어
고성만, 2005, ‘제주4.3담론의 형성과 정치적 작용’, 제주4.3연구소 편,『4.3과 역사』통권 제5호, 도서출판 각 : 제주.
김성례, 1999, ‘근대성과 폭력 : 제주 4.3의 담론정치’, 역사문제연구소 외편,『제주 4.3연구』, 역사비평사.
김종민, 1999, ‘4.3이후 50년’, 역사문제연구소 외편,『제주 4.3연구』, 역사비평사.
박찬식, 2008, 『4.3과 제주역사』, 도서출판 각 : 제주.
장윤식, 2005, ‘제주4.3사건 초기 ’무장대‘의 조직과 활동’, 제주4.3연구소, 『4.3과 역사』통권 제5호, 도서출판 각 : 제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2003,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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