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해양유민의 사회사 독후감
이영권 저
제주는 역사적,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육지부와 다른 독특한 생활모습을 많이 보인다. 육지에서 사라진 문화가 제주에 남아있기도 하고, 제주에만 존재하는 문화가 있기도 하다. 인류학이나 민속학 등에서 제주의 종교, 언어, 생활문화 연구를 통해 육지부의 잃어버린 문화 원형을 찾는 작업 등을 하거나 제주만의 전통문화를 연구하기도 한다. 제주민속과 문화에 대한 연구는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제주역사에 대한 연구는 그에 비해 상당히 미약하다. 육지와 다른 제주 나름의 역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탐라국, 이재수의 난, 43 등이 회자될 뿐이다.
이영권의 연구는 조선시대 해양유민의 사회사를 주제로 다루며 척박한 제주역사 연구에 중요한 시선을 제공한다. 그는 제주의 중세사를 ‘중앙정부중심, 농업경제중심, 육지 중심 사관이 아니라 ‘상업교역경제, 육지가 아니라 바다’를 중심으로 기술한다. 기존의 국가주의 역사서술에 따르면 제주역사는 세금도 제대로 걷을 수 없는 척박한 변방의 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의 연구를 통해 바다로 둘러싸인 섬 제주가 가진 해양성, 제주유민들이 갖는 다양한 성격을 볼 수 있다. 왕조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백성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는 한정된 기록 속에서 제주유민의 자취를 쫒고 조선시대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을 그려냈다.
농업경제만을 기준으로 제주사람들을 보면 척박한 땅에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는 게으른 존재, 여성들을 바다로 내몰아 겨우 생존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주가 지닌 해양성에 주목하게 되면 중국, 일본과 교류하고 어울려 살기도 한 국제인, 해상교역을 담당한 상인, 임진왜란 등 중요한 시기에는 물길을 잘 아는 전문가, 해산물 진상을 맡았으면서도 백성으로 편입되지 않은 경계인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백성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한정된 기록과 자료 속에서 제주유민들의 사회상을 찾아내고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제주 중세사 연구에 큰 틀을 세웠다. 그러나 자료의 한정성으로 인해 몇 가지 의문이 있다. 그는 농업경제 중심에서 해상교역에 주목하면서 목마경제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해상유민의 대량 발생을 자연재해, 척박한 토지, 토호와 관리의 수탈 강화, 왜구의 침범을 큰 요인으로 본다. 그는 척박한 토지를 장기 지속요인, 자연재해와 과다 수취를 중기지속요인으로 보고 말 사교역 금지에 따른 지역경제 기반 붕괴를 중요한 단기 요인으로 본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과연 말 경제가 그렇게 큰 이유가 될까 하는 의문 역시 동시에 든다.
첫째, 원나라 지배기와 명나라 지배기 제주 경제의 모습에 대한 비교가 부족하다. 원나라 목마경제기에 과연 그렇게 제주경제가 번성했을까? 번성했다면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지배세력이 바뀌었다고 지배방식이 달라지고 경제구조가 크게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다.
원나라 지배기에 제주는 목마경제가 활성화 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적으로 교역이 활발하고 풍요로웠다. 그러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가 되며 국가의 말 통제가 강화되고 말 교역이 국가주도로 변화하면서 제주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말’관리가 원나라와 조선이 어떻게 달랐기에 한쪽은 경제의 활황기, 한쪽은 경제 붕괴를 초래할까? 원나라는 개인의 말 교역을 활성화하고 조선은 국가주도의 관리로 전환했다는 것인가. 원나라 역시 국가가 말목장을 관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관리체계를 어떻게 변화시켰기에 지역경제가 완전히 붕괴하여 난민이 발생할 정도일까.
둘째, 자연재해와 관리들의 수탈 등의 이유 외에 말 경제에 의존했던 제주경제가 붕괴하고, 말 교역이 금지되면서 해양유민이 대량 발생했다. 지역경제가 붕괴했다고 말 교역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대량으로 포작으로 전환할 수 있었을까. 교역에 종사하던 사람들과 포작은 개념이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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