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인물성동이 논쟁 - 이간, 한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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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성동이 논쟁 - 이간, 한원진
논쟁의 발단
한국에서 인성과 물성에 관한 논쟁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의 학파에 섬으로써 회암사상을 계승하는 수암 권상하(遂菴 權尙夏, 1641~1721) 문하에서 발생하였다.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강문팔학사’(江問八學士)로 일컬어지던 8인의 학자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1682~1751)과 외암 이간(巍巖 李柬, 1677~1727)이 가장 널리 알려진 학자들로서 이 두학자들이 논변을 야기한 주인공이다. 당시 남당은 인성과 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 데 반하여 외암은 서로 같다고 주장함으로써 견해의 대립을 보였다. 이들 견해의 대립은 수년 간에 걸친 서론(書論)의 형식으로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그들의 논전 열의는 더 나아가 그들 주위에 있던 스승(권상하)과 친지 및 친구들까지 그들의 논쟁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들의 논쟁에 참여한 학자들 역시 두 견해 중 어느 한 편을 지지·동조하였고, 마침내 많은 학자들이 그룹별 또는 학파적 대립 양상을 띠게 되었다. 윤사순, 『인성물성론』 , 한길사, 1994, 22~23쪽.
이러한 그룹별 또는 학파적 대립이 우연히도 대체로 호서(湖西:충청도)지방의 학자들과 낙하(洛下:서울부근)지방 학자들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대체로 호서지방의 학자들이 인성·물성의 상이(相異)를 주장하는 남당의 견해에 동조한 반면, 낙하의 학자들이 그 상동(相同)을 주장하는 외암의 견해에 동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논쟁은 일종의 지방색에 의한 분별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물성동이론’이라는 명칭 이외에 ‘호락논쟁’(湖落論爭)이라는 별칭도 갖게 되었다. 윤사순, 『인성물성론』 , 한길사, 1994, 23쪽.
기질지성과 본연지성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같고 다름에 대한 논의는 사실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리학에서 성性을 본연지성으로 이해한다면 인성과 물성은 ‘같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고 기질지성으로 본다면 인성과 물성은 ‘다르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율곡이 잘 지적한 바와 같이 본연지성은 통성通性을 지닌 리理를, 기질지성은 국성局性을 지닌 기氣를 주안점으로 하는 개념이다. 곽신환, 「‘같음’과 ‘다름’의 문제에 대한 조선조 후기 성리학적 접근」, 한국공자학회, 1995, 348쪽.
갑의견해: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未發)일 때는 본연지성이요, 일단 감정이 일어나면(已發) 기질지성이다. 미발일 때는 기질氣質이 순선純善하다. 따라서 성性 역시 선善하다. 기氣가 본연本然에서 선善하지 않고서 리理가 홀로 선善한 법은 없다.
을의견해: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의 때에도 성性은 기질氣質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감정이 일어났다면 이것은 성性이 아니고 정情이다. 미발의 때도 기질氣質을 겸兼하여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性 또한 선악善惡이 있다. 곽신환, 「‘같음’과 ‘다름’의 문제에 대한 조선조 후기 성리학적 접근」, 한국공자학회, 1995, 348쪽.
여기서 갑의 견해는 이공거李公擧(간柬)의 입장이고, 을은 한덕소韓德昭(원진元震)의 견해이다. 갑은 아직 발동하기 이전을 ‘본연지성’이라고 하고 이미 발동한 경우를 ‘기질지성’이라고 하는 데 반하여, 을은 발동하기 이전에도 이미 기질지성이며 발동한 후는 성性이며 본연지성이란 하늘이 인간과 금수 초목 등에게 리理를 내릴 때의 처음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 따름이라고 한다. 미발未發이발已發로 본연 기질을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곽신환, 「‘같음’과 ‘다름’의 문제에 대한 조선조 후기 성리학적 접근」, 한국공자학회, 1995, 349쪽.
갑의 주장은 성性이 선善하다는 것만을 알아 외물에 감응하기 이전 상태의 경우에 기질氣質의 선악善惡을 말하고자 아니한다는 것이고, 을의 입장은 외물에 감응되기 이전에도 기질을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외물에 감응되기 이전에도 선악이 있다는 것으로서, 이미 말한 것으로 말하면, 을의 주장이 비교적 주밀하고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논의의 병폐가 없다고 주장하는 을의 견해는 미발이발을 본연기질로 논할 것이 아니라 성性과 정情의 맥락에서 논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기질지성은 이미 발한 성이 아니라 그 기질지성에 미발이발이 있다는 뜻이다. 곽신환, 「‘같음’과 ‘다름’의 문제에 대한 조선조 후기 성리학적 접근」, 한국공자학회, 1995, 349쪽.
갑론에 서있는 사람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본연지성을 기질이 순선한 상태의 성, 따라서 순선한 성으로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근거를 맹자에서 찾는다. 채치홍은 ‘인간의 본성本性이 근본적根本的으로 선善하다’는 맹자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근본적根本的으로’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본本이라는 글자는 곧 천지天地의 성性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는 리理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맹자가 성선性善이라고 할 때의 성性이 이른바 사람과 금수 초목의 성性이라면 이는 이미 리理와 기氣를 섞은 것이요, 리理가 기氣와 섞였다면 어찌 순선한 리理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곽신환, 「‘같음’과 ‘다름’의 문제에 대한 조선조 후기 성리학적 접근」, 한국공자학회, 1995, 349쪽.
오상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