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
1. 시작하는 말
작년은 한일수교 50주년이었다. 한일수교가 50년이나 된 만큼 두 나라간의 거리는 줄여졌을까? 실제로 일본에서는 겨울연가의 폭발적인 인기로 한동안 한류붐이 일었었다. 그와 함께 일본을 겨냥한 문화마케팅이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여 일본도 비자를 없애 한국인의 일본관광을 용이하게 하였다. 작년 한해만해도 일본을 방문한 한국관광객의 수가 엄청나다고 하니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국과 일본의 거리는 아직도 멀었다.
독도문제가 일어나 곳곳에서는 서명운동이 일어났고, 수요일마다 한국주재 일본대사관에는 고령의 할머니들이 위안부와 관련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한일수교50주년이라는 말과는 상관없이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진행되었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이해와 갈등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정확히는 알수 없다. 하지만 서로간의 이해가 배제된 형식적인 수교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갈등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이 현상을 바른 시각으로 볼 눈을 가지고 있을까? 거의 100년전에 엇갈려버린 역사가 현재의 시점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한국의 작가 공지영과 일본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한 이야기를 한국인의 시선으로, 일본인의 시선으로 써낸 것이다. 공지영이 쓴 것을 보면서 솔직한 한국인의 시선이라 읽을 때마다 그렇지, 그렇지 하고 맞장구를 쳐댔다. 세상을 살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기회는 얼마나 될까? 왜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졌는지 이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기위한 대책은 있을지, 서로에 대한 이해는 결코 안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소설을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2. 한걸음 다가서기: 한국과 일본
왜 그렇게 흰옷을 입는거냐고 그는 물었었다.
“그건 말이야. 한국인에게는 흰빛이라는 것은 신앙과도 같은거야. 전쟁이 나거나 흉년이 나던 어려운 시절에 땔감조차없던 시절에도 한국인들은 옷을 빨고 불을 지핀 후에 흰옷을 삶아 더욱 눈부신 흰빛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켰어.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흰빛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색이래”
우리나라를 흔히 백의민족이라고 얘기한다. 흰빛을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짧은 생각이지만 흰빛은 물들기 쉽고 더럽혀지기 쉽고, 색 바래기도 쉬운 색이다. 이런 색을 사랑했던 우리 민족은 어쩌면 모든 것을 수용하려고 하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포용력은 많은 인내를 요구하고, 가끔은 상처를 감수하기도 해야한다. 흰빛을 사랑한 우리 민족이 한이라는 문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발상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을까? 흰빛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흰빛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매사에 조심해야하고, 흰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랜기간의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이 구절에서 난 한국의 모습을 본 것만 같았다. 흰빛으로 대변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수용하려고, 감수하려고 했던 우리나라의 민족성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이 민족성이 훗날 많은 상처와 아픔을 수반하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굳은 믿음이 심어져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시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동양인들을 본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이 생길까?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일본인 젊은이가 정중한 말투로 물었었다.
“포도주 한잔 더 할래요?”
노래는 계속 되고 있었다. 내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자 일본청년은 미안해요, 꼭 일본인 같아서 하고 말했다. 배낭을 메고 유럽을 돌며 나는 많은 일본 젊은이를 만났다. 일본말로 이야기 할때도 있었고, 록이를 생각해 영어로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서양에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닮은 친근한 형제 민족 같았다. 그런데 동양으로 돌아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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