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민촌
민촌에서 그려지는 가난은 1920년대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난의 모습이다. 1920년대 작품들 중엔 유난히도 가난을 다룬 작품이 많다. 그 많은 작품 중 하나인 민촌이 좋은 작품이란 평을 받는 데는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1920년대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난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1920년대나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이런 문제를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경제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의 경계는 날로 심해져가고 가난은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 살면서 느끼는 것과 민촌에서 읽고 느끼는 감정의 비슷함에서 공감을 끌어내는 것 같다.
민촌은 무거운 주제인 가난을 중간 중간 보여주는 해학적인 면과 사랑이야기를 함께 다룸으로써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중에서도 샘가에서 아낙네들의 떠드는 소리, 보리방아를 찧는 모습, 두 남녀의 순박한 마음을 나타낸 부분은 읽는 동안 미소 짓는 부분이었다. 가난하지만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며 사소한 것에도 웃음 짓는 그들은 가난 속에서도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보리방아를 찧으며 노래하는 부분이 가슴에 가장 와 닿았다. 또, 두 남녀 점순이와 서울댁, 순영이와 점동이의 순수한 모습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였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그들의 순수한 모습은 잠시나마 가난이란 무거운 주제를 잊게 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민촌의 주제가 가난인 만큼 민촌 속에서 가난한 그들의 비참함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모처럼 오셔야 앉으실 데도 없고,,, 원 사는 꼬라구니가 이렇답니다.,,,
그 밀방석 위라도 좀 앉으시지!” 하고 그는 불안한 듯이 얼굴에 당황한
빛을 띠고 있다. 마치 무슨 죄를 짓고 난 사람같이. 과연 그는 가난을
죄로 알았다. 안방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던 박주사 아들은 교만한 웃음을
엷게 머금고 “무얼 바로 갈걸! 괜찮아.” 하는 모양은 자기의 행복을 더욱
느끼고 자기가 금방 더한층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의식하는 표정 같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박주사 아들은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도 반말을 해가며 그들의 가난한 삶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느끼는 자본주의자이다. 점순이의 어머니는 이런 박주사 아들에게 굽신거린다. 이런 점순이 어머니는 가난을 죄로 안다. 가난한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그들에게 누가 가난이란 벌을 내리는가,,? 끊임없이 일하는 그들에겐 끝없이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 박주사와 같은 자에겐 돈과 지위와 명예가 있다.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그들은 평생 죄인이 되어 살아간다. 점순이 어머니는 박주사 아들을 배웅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까닭 모를 눈물이다. 자신이 외면했던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삶을 깨달아버린 눈물이었을까,, 자신의 삶의 한심함의 눈물이었을까,, 아마도 점순이 어머니 자신의 삶에 대한 원망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은 점순이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점순이, 순영이, 점동이까지도 눈물 짓게 만든다.
저편 나무속에서도 목메어 우는 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점동이와
순영이도 거기서 우는 게다. 아직 인생의 대문에도 못 들어간 그들을
울게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달아! 혹시 네가 아는가? 물소리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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