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민촌
이기영의 민촌이라는 소설은 가난이라는 것을 매우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농촌이라는 곳에서 산 것은 아니지만 외갓집이 농촌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농촌의 문화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민촌이라는 작품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농촌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의 농촌이 노인들이 많고 계속해서 사람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면 작품에서 나타나는 농촌은 삶이라는 대명제가 걸려있는 터전으로서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실로 인간으로 겪을 수 있는 당시의 가장 어두운 현실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번 중간고사 시험문제가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서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무엇이던지 들어주시려 애쓰시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가난에 대해 쓰려고 하니 상당히 난감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가난을 겪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서밖에는 없었다. 옛날부터 간접경험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던 것이 책이 아닌가?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고 수업의 연장에서 수업교재인 책을 읽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이런 기회가 아니면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인 것이다. 이 작품은 말이다. 솔직히 암울하고 죽음이 많이 나오는 소설은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영영 읽을 수 없지 않았나 싶다.
민촌은 점순이와 서울댁, 점동이와 순영이의 열정을 다루면서도 가난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룬 것 같다. 고작 장리벼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박주사의 집에 후처로 들어가게 되는 점순이의 처지도 참 불쌍하고 순영이도 역시 다른 가마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그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부자들은 더욱 잘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사는 현실, 이러한 현실이 과거의 그 당시에도 그대로 재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소설에서와 같은 일이 물론 없겠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는 꽤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채를 잘못 끌어 썼다가 더욱 큰 봉변을 당한다거나 하는 등의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이 소설에서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돈 없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확실하다. 소설에서의 것이 삶속에서 묻어나는 가난이라면 후자는 돈을 씀으로서 만들어지는 가난이라는 점정도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럼 민촌에서 나타나는 가난을 작가는 어떻게 보았을까? 작가는 농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생기는 가난이라는 문제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서울댁이라는 지식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당시의 문제점 부르주아들의 문제점이나 경제구조의 모순에 대해 역설하고 있긴 하지만 그뿐 그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말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농촌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의 가난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는 상당부분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이것은 공간이 바뀌어 가난을 나타낸 것일 뿐 그 이상의 것을 나타내지는 못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즉, 작가가 바라보는 가난은 현실 그 자체로서의 가난일 뿐 그로 인해 다른 어떤 것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이 소설이 당시의 농촌사회의 가난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된다.
가난은 인간을 변하게 만든다. 홍염이나 탈출기 등의 소설에서는 방화나 살인 등으로 그것이 드러났고 개밥에서는 개와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그것이 드러난다. 가난 때문에 생기는 서러움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듯하다.
나도 용돈이 다 떨어지면 엄청나게 서러울 때가 많은데 하물며 장리벼에 딸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촌에서는 홍염처럼 방화를 하지 않고 개밥에서와 같이 개와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후처로 들어가면서 끝이 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었던 것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그저 상황에 순응하던 모습, 바로 그것이 민촌에서 드러나는 가난에 대한 사람들의 대처 방법이다.
1920년대 거의 모든 작가들이 가난에 대해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서해 최학송과 같이 실제로 가난했던 작가들도 있었을 것이고 김동인과 같이 풍족히 살던 작가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글을 쓸 때 자신의 경험을 직접 썼을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저 관념적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대로 가난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썼을 수도 있다.
서러움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게 하는 주제로 가난을 택하여 글을 쓰던 당시의 작가들이 어떤 경우에는 성공적으로 가난을 형상화 했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그저 관념적인 가난을 형상화 하면서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긴 했을 것이고 그것을 당시의 식민지 상황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고 고질적인 경제구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가난이란 참으로 서럽다. 그렇기 때문에 슬프다. 그래서 소설의 좋은 주제가 되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민촌에서는 가난을 담담하게 표현했고 그래서 더욱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발견해야 하겠다. 나 개인의 생각만으로 이 작품을 판단하기에는 나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하고 배워나가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민촌이라는 작품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너무 풍족하게 그래서 방만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등의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생각의 답을 확실하게 낼 수는 없었지만 좀 더 성장하게 된다면 이러한 것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민촌에서 드러나는 가난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판도 해보았고 고민도 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좀 더 국문학적으로 발전 시켜주고 전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결과를 어느 정도는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보다 어른인 세대들은 가난했던 시대를 살아왔다. 그래서 가난에 대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필사적으로 가난하게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난이 주는 서러움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세대들은 가난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한다. 부모님 세대들의 노력으로 가난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이 민촌이라는 작품을 읽어본다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난이라는 현실에 대해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감히 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 해주고 싶다.
가난이라는 서러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그들이 좀 더 성장 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면 민촌이라는 작품으로 그들에게 작은 경종을 울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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