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민촌
1. 서론
김유정에서 이문구로 이어지는 농민 소설의 계보에 이기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소설에 관심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몰랐던 사실을 말이다. 그저 고등학교 때 고향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로만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작가임을 몰랐던 사실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민촌 이기영. 그는 오히려 김유정이나 이문구보다 더 농촌을 사랑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스스로 민촌이 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한 사람의 호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것일 텐데, 이기영이 죽는 순간까지도 농촌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굳이 그의 행적을 조사하지 않아도 짐작할 만한 것이었다. 여기에 정말로 농촌을 사랑했던 작가 민촌의 민촌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 이름도 그의 호와 같아서 내심 기대했었는데 기대에 충족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좋다기보다는 민촌이라는 작품에 농촌과 농민을 바라보는 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소리 없는 외침이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외침은 연민과, 희망과, 애정의 외침이었다. 왜였을까.
2. 농민을 바라보는 민촌의 시선
민촌에서는 이제까지 읽어왔던 경향 소설에서 나타난 농민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다른 작품들은 모두 농민을 고통 받고 핍박 받는 존재로 그려왔다. 최서해의 탈출기에서 보여준, 주요섭의 개밥에서 보여준, 이익상의 쫓겨 가는 이들에서 보여준 농민들의 모습에서는 절망과 고통 이외에는 어떤 모습도 비춰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생활의 활기와 희망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민촌에서 보여 지는 농민들의 모습은 작품 곳곳에 생동감과 활기가 넘쳐흐른다. 작품 전반에 묘사되고 있는 샘가에 늘어앉아서 보리쌀을 씻고 빨래를 하는 조첨지 며느리, 점박이 마누라, 성삼이 처, 점순이 등의 모습은 마치 화가 박수근의 를 연상시킨다. 먹고 살기가 힘들 정도로 고단한 삶이지만 빨래터에 있는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은 공동체적 삶을 바탕으로 하는 사람과 사람의 정이다. 힘들지만 그래도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의 애정 어린 말 한마디 한마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나누는 화두는 양반에 대한 질책과 회의다. 박주사 아들이 또 첩을 들인 것에서 출발하는 조롱과 멸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는 한(恨)이라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뉘앙스가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양반에 대한 분노는 한이라기보다는 신명을 통한, 즉 이웃끼리의 서슴없는 입담 속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분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한의 승화는 한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농민에게 있어서 그 한의 승화제가 바로 뒷담화인 것이다. 비록 양반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뒷담화를 통해서 그들 스스로 위안을 삼는 행위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활기를 잃지 않는 농민들의 모습이다.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그러한 존재의 끊임없는 생명력의 발산은 농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의 삶의 현장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보리방아를 찧으면서 흥겹게 노래 부르는 이들의 행위 또한 생명력의 발산이며, 어쩔 수 없이 박주사네 첩으로 팔려가게 된 점순이네 식구를 구제하기 위해, 작지만 애정이 담긴 곡식을 보내주는 이들의 모습 또한 이웃에 대한 애정과 생명력의 발산이라고 볼 수 있다. 민촌은 바로 이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생명력 있는 농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3. 계급의식의 발로
작품 전체의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것은 농민과 양반, 피지배층과 지배층이라는 두 대결 구도의 모습이다. 이런 큰 뼈대 속에서 농민과 양반의 갈등 양상이 나타난다. 작품 전반부에 나타난 박주사 아들이 새 첩을 들인 것, 마을의 최고 노령인 조첨지조차도 박주사에게 어른대접을 못 받는 모습, 서울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양반에 대한 비판적 의식, 마지막으로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은 장리벼 한섬에 박주사에게 팔릴 수밖에 없었던 점순이다. 서울댁은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벌어서 부자와 가난이 없이 산다면 그때야말로 이웃사람은 진정으로 정답고 사랑하고 싶어서 오늘은 늬집에 모이자, 내일은 우리집에 모이자 하고 즐기면서 뛰노는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그의 말은 지금 현실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어찌 보면 허망한 말일지 모른다. 농민과 양반이라는 계급이 너무나 확고했던 시절에는 그렇게라도 말할 수밖에 아무런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올 것에 대한 꿈에 찬 환상으로 그들은 조금의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다만 특이한 점은 서울댁이라는 양반을 통해서 양반을 비판한 점인데, 이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같은 신분에 속해 있는 양반을 통해 양반을 비판함으로써 좀 더 객관적인 비판이 가능하도록 한 점과, 서울댁과 같은 양반, 즉 박주사와는 다른 참 양반의 모습을 합리화 시키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비판에 있어서는 편견과 선입견이 개입해서는 않되는 것처럼 핍박받는 농민의 눈으로는 양반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 이루어 질 수 없다. 따라서 같은 신분인 양반을 통해 양반을 비판하게 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비판의식을 보여주려고 한 의도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후자는 작품 전반에 걸쳐 인물들의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 “같은 양반이라도 아랫말 서울댁 양반은 그렇지 않더구만”, “참말로 예전 양반은 양반다운 행세가 있었다네” 가 바로 그것이다. 돈만 밝히고 그릇된 행동을 하는 것은 양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참양반에 대한 합리화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다.
4. 가난의 형상화 문제
비록 활기와 생명력이 넘쳐 나는 민촌이지만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가난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농촌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그 배경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촌은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을까? 민촌의 가장 큰 특징은 가난의 현실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기진의 붉은쥐에서 보여준 가난의 관념성과 이익상의 쫓겨 가는 이들에서 보여준 외부적 현실도피와 같은 다소 추상적인 가난의 문제, 그리고 주요섭의 개밥에서 보여준 엉뚱하고 극단적인 가난의 문제와는 다르게, 농촌의 실제 현장 속에서 가난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촌에서 시종일관 다루어지는 가난은 계급적 구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특별한 사건의 발생 없이 일상의 모습 속에서 실제 농촌 사회의 보편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다른 경향 소설과 구별되는 민촌의 특징이다. 가난의 일상성이야말로 이 소설이 생명력을 가진 소설임을 보여준다. 즉 가난에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 없다. 가난은 평범한 현실이다. 간혹 드라마에서 재벌 집안이 갑작스런 부도로 인해 한 순간에 빈민으로 전락하는 이야기는 가난의 일상성이라기보다는 우연의 요소에 의한 가난으로 보아야 한다. 가난의 일상성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달동네에서 전전긍긍 살아가는 빈민들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농촌에는 가난한 농민이 있는가 하면 지주와 같은 부자도 있었다. 양식이 떨어지면 빈농들은 지주의 논을 소작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해가고, 지주들은 그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우위를 의식했을 것이다. 민촌에서 빈농으로 대표되는 점순이네와 지주로 대표되는 박주사 아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다만 민촌에서도 어쩔 수 없는 가난의 현실이 마지막에는 점순이가 박주사 아들에게 팔려가는 상황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작가 이기영도 가난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난의 일상성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그 극단적 상황이 점순이가 팔려가는 장면으로 설정된 것은 이 작품의 한계로 보여 진다. 그리고 점순이를 좋아 했지만 팔려가는 점순이 앞에서 어떠한 적극적 행동도 하지 못한 서울댁도, 가난을 똑바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한계적 인물이라고 생각 된다.
4. 결론
요컨대 지금까지 민촌은 농촌사회의 생명력과 애정을 보여준 작품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계급구도 속에서 가난의 문제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형상화 한 작품이었다. 이것이 이 작품이 리얼리즘 소설로 이어지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농촌 사회에서는 가난의 문제가 존재한다. 개개인이 전부 부자가 되지 않는 한 가난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앞으로도 계속 공존할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의 배경이 농촌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작가 이기영은 민촌이라는 작품을 통해 농촌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비록 부자가 아니고 권력도 없는 농민들이었지만 그들 존재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작품 곳곳에서 묻어난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따뜻한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농민들 덕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농민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 듯싶다. 오로지 의사와 변호사와 국회의원 같은 힘 있는 이들에게만 고개를 돌린다. 이기영이 지금 현재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미소를 지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회심의 미소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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