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1. 서울말의 보고
삼대는 우리소설 가운데 서울말을 가장 풍부하게 살려 쓴 작품이다. 지역 방언의 풍부한 살려 쓰기가 지니는 의미는 어떤 지역의 방언을 소설 언어로 되살렸다는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주변의 인간들, 그들의 삶과 의식을 존중하는 정신의 실현이기도 하니 표준어의 획일성과 배타적 차별성에 근거한 가치의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지닌다. 또 지역 방언의 살려 쓰기는 곧 인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니 추상적 관념의 폭력적 개입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지역 방언 살려 쓰기에 내재된 이런 의미들과 삼대의 문학사적 의미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중간층의 구체적인 생활 언어를 생생하게 살려 씀으로써 삼대는 전 단계 문학의 일반성격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새로움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좁은 단일성의 세계에 갇혔던 지난 시대 문학 일반과는 달리 복잡한 관계의 그물로 이루어지는 복합성의 세계, 중층성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대에는 세 부류의 인물군이 등장하는데 소설의 중심에 놓인 것은 조씨 일가의 인물들이며, 실천적 진보주의자들은 김병화와 친구 사이이며 좌익 동정자인 조덕기를 통해, 돈의 노예들은 타락하여 파락호가 된 조상훈과 그 자신 그들과 한패인 수원집을 통해 조씨 집안 사람들과 관계 맺게 된다.
삼대에서 실천적 진보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는 3.1운동을 비롯한 전 시대 민족주의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종적으로는 러시아를 비롯한 국외 운동세력과 국내 운동 세력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있는데, 이로써 당대 조선의 진보적 운동의 현실이 동시대 그 어느 소설에서보다 폭넓게 반영되었다.
염상섭의 작품 속에서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돈을 향한 욕망에 이끌려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의 안쪽에 대한 깊은 탐구는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문제 삼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염상섭은 그런 인물들을 통해 당대 현실의 부정적 본질을 파헤침으로써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오직 돈만을 바라 무슨 일이든지 서슴지 않는 매당집의 인물들을 통해 염상섭은 당대 한국 사회의 안쪽을 파헤쳤던 것이다.
삼대 이전의 염상섭 소설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젊음의 문학’이다. 걸작 만세전이 대표하는 그 젊음의 문학은 극단적인 부정의식을 근거한 낭만적 초월의 문학이었다. 일본 자연주의 문학에서 배운 염상섭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 탐구정신을 무엇보다 강조하였는데 ‘환멸의 비애’란 그런 정신을 집약해 보이는 일종의 깃발이었다.
젊은 염상섭의 그 같은 객관적 탐구의 정신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관주의적 편향에 의해 깊이 흔들리기도 했다. “주관은 절대다. 자기의 주관만이 유일의 표준이 아니냐. 자기의 주관이 용허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사회가 무엇이라 하든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느냐”라는 단호한 선언에 담긴 주관 절대주의는 ‘환멸의 비애’를 떠받드는 객관적 탐구의 정신과 정면으로 상치된다. 이 시기 염상섭의 정신은 객관적 탐구주의와 절대의 주관주의 두 극단으로 찢겨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염상섭뿐만 아니라 객관 지향과 주관 지향이란 서로 대립적인 두 극단으로의 분열은 1920년 초,중반 우리 문학 일반의 핵심 특성 가운데 하나였다. 이 시기 경향문학은 객관 현실의 탐구와 반영이란 객관주의적 명제와 객관현실의 변혁을 위한 의지적 지향이란 주관주의적 명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염상섭 초기 문학의 이 같은 분열은 주관주의적 편향의 통어와 객관적 탐구 정신의 강화를 통해 지양되게 된다. 사랑과 죄, 광분, 남충서, 등을 거쳐 삼대에 이르는 과정은 그 같은 지양의 힘든 행로였다고 할 것이다.
경향문학이 이 같은 분열을 지양하여 한 차원 높아지게 되는 것은 이기영의 장편 고향에 이르러서인데 삼대는 이보다 조금 빨랐다. 1930년을 넘어서며 경향문학 진영에서는 이 같은 분열에 대한 자기비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염상섭 문학이 논의의 거점 가운데 하나였음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2. 깊은 슬픔, 처절한 원한
우리 근현대 소설 가운데는 파행적인 역사 전개가 낳은 현상으로 인해 감옥 체험을 다룬 작품이 많다. 크게 보아 두 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김동인의 태형과 손창섭의 인간동물원초가 대표하는 유형으로 인간 모멸주의에 근거한 허무의 사상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고 반대편에 염상섭의 삼대와 오상원의 유예가 있는데 자신의 실존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념인의 자기 확인의 세계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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